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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py and copy> 110x74.44cm, inkjet printer, 2019
<작가노트 >
그들이 남기고 간 물건들
마산에 처음 도착한 날 나는 마산항을 보기 위해서 향했다. 마산역에서 어시장까지 많은 것을 보았지만, 도착해서 봤던 것은 개발 중인 토지였다. 수많은 배와 고요한 개발지역의 이미지는 웅장했다. 하지만 그곳은 무언가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이렇게 첫 나의 마산만 이미지를 뒤로 한 채 마산항을 둘러본 뒤, 레지던스 숙소로 향했다. 나는 도시를 둘러보며, 마산에서 일어났던 수많은 민주항쟁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 내가 처음으로 간 곳은 산호공원이었고, 그곳에서는 3.15 민주항쟁을 기념한 작은 재단이 있었다. 기념탑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마산만이 내려다보이는 전망대가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도시를 살펴보며 수많은 빌딩 숲 사이로 개발지역을 보게 되었다. 크기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개발지역은 바다 위에 떠 있었고, 형태는 누군가 재단한듯 하나의 조각물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마산에서 민주항쟁의 파편을 찾으며 경험했던 매립지는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하나의 거대한 권력의 상징물처럼 다가온다. 산호공원에서 보았던 곳에 호기심을 가지며, 마산에 새롭게 매립이 진행되는 서항지구를 조사하게 되었다. 조사하면서 알게 된 마산의 매립지들은 경제발전을 위해 동시대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많은 매립지를 바라본다. 해안을 이루고 있던 개발지역은 바다를 계속해서 가리며, 그 위로 만들어진 도시에 항구와 하천 그리고 공원에 작은 언덕까지 모두 차가운 콘크리트로 둘러싸여 있다. 마산의 도시는 이렇게 누군가를 위해 조각을 한 듯 모든 것이 기하학적으로 만들어져 간다. 경제적 발전의 면목 아래서 그 시대 정치적 세력은 상징처럼 만들어갔던 수많은 매립의 흔적은 지금 마산만의 형태를 보여주며, 지금의 도시 역시 새로운 매립지를 통해 경제 발전을 만들려 한다. 하지만 그들의 경제적 발전은 바다를 잃어 가며, 그들의 행정적 업무는 단순한 개발이 이루어질 뿐이다. 그들이 철저하게 바다를 가리며 개발지역을 이제는 우리는 그곳을 단순한 도시 발전의 내력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개발의 잊혀졌던 공간에서 남겨진 물건들과 수많은 매립지 안에서 나는 누구도 주목하지 않은 것들을 이야기하며, 그들의 개발에서 감추려야 더 감출 수 없던 흔적과 파편들은 나의 시선으로 박제된다. 이렇게 수집했던 모든 것은 마산만이 잃어버린 바다와 현재 일어나고 있는 도시 개발의 현상들이며, 수집의 형태와 나의 사진상의 기록은 마산에서 내려오면서 보았던 이미지일 뿐이다.
<작가노트>
의미가 고착화된 대상을 가져오거나 여러 가지 사물과 인물, 배경이 모였을 때 생겨나는 장소성의 모호함을 제공하기 위해서 이미지를 선정하고 편집한다. 화면 속 대상이 수백 년 동안 쌓은 역사의 편린은 각 주체마다 읽기 방법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를 한 화면에 이와 같은 역사적 오브제는 함께 편집되고 모여 있을 때, 그들의 고유한 역사의 정체성은 의심받게 된다. 그리고 지금껏 쌓인 그 퇴적층은 모두 씻겨 내려가게 된다. 화면에서는 새로운 역사가 생성되고, 아직 닫히지 않은 가능성을 재고한다. 의미를 끄집어내는 행위는 의미를 박탈시키며 새로운 껍데기를 재생성하려는 시도이다.
회화 작업을 통하여 오늘날 포스트식민주의와 민족 간의 정체성, 그리고 타자와 구별 짓기, 타자의 의미를 구성하는 조건을 살펴보고자 한다. 역사는 인과관계를 좇아 뿌리를 찾아 나가는 교정과 해석을 요구한다. 역사의 근원이란 항상 회복할 수 없고 수면 위에서 흐릿하게 보일 뿐이다. 역사적 자료는 지식인들이 축적한 권력의 체계이며, 설령 이것이 진리의 영역에 속해 있을지라도, 진리를 소유할 특권을 주게 해선 안 된다. 비주류적인 요소들의 돌발사고와 질서 밖에 있는 우연성과 모호함을 작업에 적용한다. 나는 거대 담론으로부터 브리콜라주 방식을 통해 현재를 끊임없이 새로고침하여 새롭게 이야기하길 원한다. 우리가 받아들이고자 한 정보들은 충분히 다른 정보들로 대체되며 다른 세계로의 가능성을 살펴볼 수 있길 원한다.
<비평글>
영화는 여러 사람들이 협력해야 만들 수 있지만, 회화는 작가 혼자서 만들 수 있기에 회화 작업을 하게 되었다는 작가의 말이 떠오른다. 신선우는 잡지나 매체에 떠오르는 사진에서나 있을 법한 정경을 자신의 것으로 바꾸어 특별한 정황의 그림을 그려왔다. 이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은 현실의 비현실, 마법 같기도 하지만, 거꾸로 현실을 찌르는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인다. 한때 프랑스에서 유행했던 신구상회화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번 결과 전에서는 부마사태가 일어난 해부터 지금까지의 연도를 새긴 돌 판이 도미노처럼 서있는 작업을 했다. 언제나 비판적인 그의 시선이 내, 외부를 향해서 전개되지만, 예술 그것이 어떻게 감동을 주고 어떤 가치를 발휘하는지 성찰하면서 나아가기를 바란다.
-장석원 비평가
신호철
<약력>
2017 동국대학교 조소과 졸업
[개인전]
2018 준비되지 않은 이별에 대한 두려움, 갤러리 반, 서울
[단체전]
2019 창원 리좀 레지던스 결과전, 마산미협 아트홀, 창원
2019 경남아트펀펀페스타, 사천시문화예술회관, 사천
2019 경남국제아트페어, 창원컨벤션센터, 창원
2019 창원 리좀 레지던스 소개전, 에스빠스 리좀, 창원
2019 부유하는 뽕돌, 경기 상상캠퍼스, 수원
아침식사 됩니다, 동국 갤러리, 서울
아트피크닉, 대명리조트 갤러리 D, 홍천
2018 유니온아트페어, 성수 S 팩토리, 서울
Unification, 성수 바이산, 서울
[수상경력]
2018 광명 업사이클 아트센터 전국대전 금상
[레지던시]
2019 창원 리좀 레지던스
<장손_잔소리> 44x77cm, 찢어진 서화,neon sign,urethane, 2019
<Masterpiece series>가변설치, paper mache paste,urethane, 2019
<작가노트>
2017년부터 결핍과 욕망이라는 주제로 작업을 진행해 오고 있다. 시간 순으로 첫 작업이 장손시리즈이다. 장손시리즈는 의사 약사 집안에서 집안의 가업을 이어나가지 못해서 생기는 가족과의 갈등에 대한 작가 본인의 이야기이다. 여기서 생기는 스스로에 대한 결핍 그리고 욕망이 이후 나의 작업의 키워드라고 할 수 있다. 부모와 나 사이에서의 욕망의 투사, 그리고 거기서 발견한 새로운 실재계가 바로 서예 위로 올라온 네온과 플라스틱이다.
그리고 그 다음 작업이 ‘미술을 대하는 순수한 자세’이다. 대학원 4학기를 마치고 작업의 학술적 한계와 제작의 어려움에 부딪혀서 생각을 정리할 겸 고향으로 내려오게 되었는데, 본가에서 거의 20년도 더 된 나의 지점토 조각작품을 보게 되었다. 지점토 조각에서 아이디어를 얻어서 29살의 나이에 다시 어릴 적 방식 그대로 조그만 조각을 제작하게 되었다.
나에게 지점토란 욕망의 표현에 있어 가장 순수한 매체 중에 하나이다.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로 내가 원하는 것들을 다 이루면서 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품게도 해주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처음에는 생필품(편의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스팸, 콘돔, 쌀)을 그 이후로는 사치품들을 하나하나 제작하게 되었다. 사실 그때 어릴 적 지점토 조각으로 인해 현재의 전공을 선택하였고 작가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당시에는 내가 욕망하는 것들이 강아지, 꽃, 풀, 등등 순수한 것들이었다면 현재는 좀 더 물질적인 것들을 욕망하고 있는데 과거 나의 모습과 현재 나의 모습이 대비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어릴 때 그림을 대하던 마음으로 현재에는 작은 조각 작품들을 놔두고 이리저리 배치하면서 정물화를 가지고 놀듯이 그리고 있다.
마지막으로 최근작인 Fragile masterpieces에 대한 설명이다. 현재의 나의 욕망은 작가로 살면서 좋은 작업을 하는 것인데, 아직까지 나는 단 한번도 나를 만족시키고 남들을 모두 만족시키는 좋은 작업을 해본 적이 없다. 이것은 작가로서 제법 큰 결핍이다. 그리고 이 결핍으로부터 오는 욕망은 바로 말 그대로 좋은 작품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좋은 작업을 하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나에게는 마치 언어세계를 벗어난 실재계에 도달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작품의 형태를 만들지 않는다. 작품의 형상을 만드는 것은 또 다시 나에게 실망감을 안겨주기 때문에 작품보다는 작품의 주변 것들을 제작한다. 아직 올려지지 않는 좌대라던가 혹은 작품을 운송하는 크레이트박스 등등을 말이다. 좌대는 좋은 작업이 올려져야 그 역할을 하는 것이고 크레이트박스에 실리는 작품은 대부분 해외전시를 다니는 좋은 작업이라고 정평이 난 것들이다. 내가 직접적으로 작품을 만들기에는 아직 내 스스로가 많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인간 자체가 결핍 덩어리 인데 어떻게 완벽한 작업을 만들 수 있겠는가?
<비평글>
어릴 적 가지고 놀던 지점토 장난이 이 작가에게는 창작의 계기가 되고 있다. 그는 욕망과 꿈 사이에서 성인이 된 지금의 관점에서 지점토로서 예술적 표현을 하고 싶어 한다. 유명작가의 작품이 해외 전시를 하게 될 때, 크레이트로 포장되어서 운반되는데, 그는 유명 작가가 아니기 때문에 지점토로 크레이트를 만들어 작품화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 아마도 결과전에서 보이는 흰색의 상자들은 크레이트와 비슷한, 무엇인가를 담는 그릇 같은 개념으로 만들어진 듯하다. 그것에 담길 중요한 물건이 대상이 아니라, 중요한 그 무엇을 담는 그릇으로서의 형태, 그 무엇도 주장하지 않기 위하여 하얗게 중성화된 네모진 형태의 배열…. 욕망이 탈색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장석원 비평가
홍기하
<약력>
2018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졸업
2016 Nuova Accademia di Belle Arti (밀라노, 이탈리아)
교환 프로그램
[단체전]
2019 창원 리좀 레지던스 결과전, 마산미협 아트홀, 창원
2019 경남아트펀펀페스타, 사천시문화예술회관, 사천
2019 경남국제아트페어, 창원컨벤션센터, 창원
2019 창원 리좀 레지던스 소개전, 에스빠스 리좀, 창원
2019 박하사탕, 별관, 서울
2018 i_seoul_nomad_life_crease_origami_shell_spread_
nihilism_gravity.com, 비아아트 갤러리, 제주
Ballin’ Bowl, Elephant Art, 서울
[상영회]
2017 BlaBlaBlind, 더북소사이어티, 서울
[레지던시]
2019 창원 리좀 레지던스
<Teachers> 가변설치, 석고, 2019
<작가노트 >
1. 아주 어렸을 때 티비에서 본 한 장면이 문득 떠올랐다. 이경규가 늑대를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는 토종 한국 늑대를 찾아 나서는 내용의 예능이었는데, 토종 늑대가 한국에 존재하지 않고 일본에 모두 보내졌다는 얘기를 듣고 이경규와 한 박사는 일본으로 날아간다. “한국 늑대는 더 이상 여기에 없습니다.” 여러 동물원을 확인한 결과 일본으로 보내졌다는 늑대들은 모두 세월이 흘러 이미 죽고 없었다. 남은 것은 몇 장의 흑백사진, 뼈와 가죽 뿐이었다. 이에 모두 망연자실한다. 그러나 예능의 일반적인 플롯에서 예상하듯이 시련 끝에 마침내 한 동물원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토종 한국 늑대를 찾는다. 흥분과 환희에 찬 이경규와 박사는 한국 늑대를 기쁜 마음으로 불러보지만, 긴 과정 끝 마침내 늑대를 마주하자 마냥 기쁘기만 할 수 없었다. 늑대는 수명이 거의 다해 서 있기조차 힘든 모습으로 숨을 허덕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한국 늑대라서 교배도 불가능하며 그저 홀로 외로이 늙어가고만 있었다. 창살 너머로 초라한 한국 늑대를 바라보며 박사는 울음을 터뜨린다. 이를 지켜보던 이경규도 눈시울을 붉힌다.
2. 경남 마산에 위치한 문신미술관에는 조각가 문신(1923-1995)의 석고 원형들만을 전시하는 원형미술관이 있다. 전시공간을 들어서자 새하얗고 매트한 수백개의 직조 조각이 나의 시야를 강타했다.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정교하고 세련된 석고 조각들은 이 세계 너머에 존재하는 형체들을 조형화한 것 같아 보였다. 문신은 본래 화가로 활동했지만 프랑스 유학 중 생계를 위해 성 보수 작업을 하면서 조형의 매력에 빠지게 되어 조각가로 전향한다. 성의 외각을 수리하고 다듬어내는 과정에서 건축 양식의 조형 언어를 알아가게 되고 시멘트나 석고 같은 재료에 대한 이해와 이를 다루는 테크닉을 습득하게 된 것이다. <한국 현대조각사 연구>에서 저자 최태만은 문신에 대한 소개를 “기술의 세련이 지나쳐 감각주의에 빠져 있다는 점도 지적하여야 할 것이다”라는 문장으로 마친다. 그러나 작품에서 작가의 감각이 앞서 두드러진다는 것은 그만큼 작가가 자신의 감각에 대한 믿음이 크다는 것일거다. 그런 믿음을 지니는 데는 자신이 쌓아온 조형 언어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을 것이고, 그러한 자부심을 지니는 데는 자신이 다루는 재료에 대한 사랑이 있었을 것이고, 그러한 사랑을 지니는 데는 수많은 시행착오와 강도 높은 노동을 견뎌내는 지구력이 있었을 것이고, 그러한 지구력을 지니는 데는 결과물 보다는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가치를 느끼는 인내심이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수많은 요소들로 빚어진 ‘지나친 감각주의’를 지닌 조각을 근래에 본 적이 있던가? 이 말은 비판이 아닌 칭찬으로 다가왔다.
3. 펑크락 밴드 그린데이(Green Day)는 1994년에 정규 3집 ‘두키(Dookie)’를 내며 펑크락을 팝 음악의 장르로 진입시켰다. 1970년대에 탄생한 펑크락은 본래 정치적인 색체가 짙었으며 제도권에 반발하고 사회를 비판하고자 했다. 연주를 한다는 것이 고상한 것이 아니라 ‘누구나 밴드를 할 수 있다’는 정신을 가지며 음악에서의 민주주의를 실천하고자 하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이 ‘펑크’이고 아닌지에 대한 기준이 점점 엄격해지면서 ‘펑크 패션’으로 정의되는 스타일의 옷을 입고 오지 않으면 뭇매를 맞는 등 배척주의가 심해지며 펑크락은 매니악한 장르로 남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린데이의 앨범 ‘두키’의 세계적인 성공으로 펑크락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미국 고등학생들이 만들어낸 밴드 그린데이는 할 일 없고 심심하고 학교가 싫은 청소년들이 재미없는 세상을 향해 외치는 분노와 조소였다. 그들이 노래하는 것은 거대한 사회 체제에 대한 것이 아니라 매일 공부하라는 부모님과 학교 선생님에 대한 짜증, 이성을 만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자조, 미래에 대한 두려움, 늙는다는 것에 대한 공포 등 보다 일상적인 차원에서의 분노였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가사와 단순한 코드로 이루어진 멜로디로 이루어진 앨범은 단숨에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게 된다. 물론 거대 기획사와 계약을 하며 스타가 된 그린데이를 펑크락 씬에서는 ‘펑크의 영혼을 팔았다’며 비판을 받는다. 펑크락 씬에서 인정하지 않는 펑크락 밴드 그린데이는 끊임없는 행진을 하고 2015년에는 ‘락앤롤 명예의 전당(Rock N’ Roll Hall of Fame)’에 오른다.
<비평글>
대학시절 일베를 상징하는 손가락 모양을 크게 스티로폼으로 만들어 주목을 끌었던 홍기하는 정치적이라기보다는 개념적인 작품 활동을 해왔다. 잃어버린 에밀리라는 아이를 찾는 검정색 돌의 표지석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평택에 살고 있는 아버지가 딸을 기다리고 있다는 내용이다. 왜 그녀는 일간 신문의 광고에나 해당 될 내용을 무덤의 묘비석 같은 형태로 그러한 기록을 남겼을까? 영원히 기념하기 위해서? 순간 잊힐만한 내용의 영원한 기록을 위하여? 아마도 삶의 허무를 반영하기 위하여 그렇게 역설적인 작업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중요하고 역사적인 것만을 기록한다는 데 대한 반대편에서 그녀는 하찮고 잊힐 만한 일들을 기념비적으로 기록한다. 결과전에서 보이는 형태들도 개념을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기념비적 견고성을 띄고 있고, 그 연원은 그리 위대한 것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장석원 비평가
젊은 작가들에게 현대에 대한 책임감을 촉구하다
예술적 관점에서 본, 부마민주항쟁과 프랑스 68년 5월 혁명의 비교, 그 이후:
젊은 작가들에게 현대에 대한 책임감을 촉구하다.
“수업에서 예술작품과 연관을 맺으려는 어떤 진지한 시도도 보이지 않았다. 특히 현대 예술에 대한 관심을 기대한다는 것은 거의 절망적이었다. 이 학교는 자신들이 살고 있는 시대에 대한 책임감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어느 대학에서든 새 학기 새 강의가 주어질 때마다, 필자는 발터 벤야민1의 상기 구절을 인용하며 수업을 시작하곤 한다. 현대 미술을 한다는 것 혹은 이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어떤 형태이던 간에, 이를 통해 현시대의 양상이라던가 문제점을 고민하면서 ‘현시대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의미이다. 미셀 푸코 역시, “캘린더나 지도가 없는 것은 언급하지 않겠다.”며, 시간성과 공간성이 없는 주제는 말하지 않겠다고 했다. 현대미술이나 사상은 “현재의 진단학 le diagnostique du présent”의 역할을 하며, 그 좌표는 “여기[지도] 지금[캘린더]”(hic et nunc)으로, 현재를 문제화(problématisation)한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방금 언급한 발터 벤야민과 미셀 푸코는 물론, 질 들뢰즈, 모리스 메를로-퐁티, 쟈크 데리다, 알랭 바디우, 장-뤽 낭시 등 많은 중요 현대 사상가들이 현대미술을 통해 그들의 사상을 전개시키고 있다.
베니스 비엔날레를 포함하여 많은 비엔날레, 트리엔날레, 등과 같은 국제적인 전시의 주제도 ‘현재’와 관련되는 문제가 주로 제시된다.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의 주제는 ‘흥미로운 시대에 살기를’ (May You Live in Interesting Times)이라는 모호한 주제였음에도, 놀랍게도 대부분의 국가관이나 본전시 작가들은 현 시대의 가장 중요하거나 시급한 문제를 다뤘다. 기후변화와 관련된 경고성의 퍼포먼스를 펼친 리투아니아 국가관에 황금사자상이 주어진 것을 비롯해, 많은 국가관들과 작가들이 이상 기후, 폭력, 불평등 등에 대해 때로는 지나치게 노골적으로 혹은 반대로 아주 예술적으로 승화해서 표현했다.
이러한 이유로, 올해 에스빠스 리좀(ACC프로젝트) 레지던스의 주제가 “부마민주항쟁”이라는 것을 들었을 때, 이번 레지던스 작가들인 박용주, 백인환, 신선우, 신호철, 홍기하를 위해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보고 기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이 항쟁은 1979년 10월 16일, 허울만 민주주의로 7년간 행해온 유신독재에 더 참을 수 없기에, 부산과 마산, 창원 지역의 학생과 시민들이 목숨을 걸고 거리로 나오면서 시작되었다. 정부는 상기 지역 일대에 비상계엄령(위수령)을 발동해 무력으로 시위를 진압했다. 이제 40주년을 맞아 한국정부는 부마항쟁 최초 발생일인 10월 16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했다. 이 항쟁의 중요한 또 다른 의의는 “<10월 부마민주항쟁 정신>은 이후 5.18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으로 이어져 독재타도와 민주화의 도화선”이 되었고, “그날의 민주화 열망은 촛불혁명까지”2 이어졌다는 것이다.
필자는, ‘마산’은 부마민주항쟁의 발생지인데다 40주년을 기념하기에 레지던스 작가들에게 시공간적으로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레지던스 생활을 하게 되면, 주변환경이나 주체측, 동료작가들, 마티에르 공급 문제 등 여러가지 크고 작은 부딪힘이나 어려움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근대 미술과 달리 현대 미술의 또다른 특징은, 어떤 경우에도 어떤 여건에서도 좋은 작품이 나와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작품뿐만 아니라 전시를 기획할 때도 마찬가지다. 필자가 실제로 겪은 오랜 경험으로 볼 때(하물며 올해도 예외없이 겪어야 했던) 아무리 철천지 원수가 될 듯이 싸워도, 너무나 신기하게도, 좋은 작품이나 훌륭한 전시가 나오면 모든 것이 용서되고 화해된다. 좋은 작업이, 훌륭한 전시가, 즉 예술이 화해와 치유를 불러온다. 근대미술은 캔버스와 물감이 꼭 있어야 하는 것에서, 현대미술에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다양한 마티에르가 사용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이뤄졌다. 아르테 포베라가 그 대표적인 그룹 중의 하나이다.
9월 24일, 필자가 비평가 워크숖을 위해 에스빠스 리좀을 방문했을 때는 아직 작가들이 입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였기에, 박용주, 백인환, 신선우, 신호철, 홍기하 작가들이 각각 앞으로 전개할 작업에 대해 들었다. 작가들의 열정적인 발표와 자신들의 미래 작품에 대한 기획, 끝없이 이어지는 질문을 보며, 많은 기대를 했다. 며칠 전 프랑스로 돌아온 필자에게 상기 작가들이 전시할 작품사진과 간단한 작가 노트가 전달되었다. 필자가 이 자료를 본 “첫 인상3” 은, 신선우 작가를 제외하고는, 나머지 작가들은 혹시 ‘주제’를 잊은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었다. 사회적이고 정치적이며 중요한 이러한 주제가 외면화되고 소통의 키워드가 되기 보다는, 오히려 내면화되어 침묵을 연장시키고 온라인상에 반짝 떴다가 사라지는 많은 주제 중의 하나처럼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심마저 들었다. 주제와 관련 없는 작품이라면, 필자로서는 더 이상 이야기할 것이 없게 된다. 사실, 필자는 이번 레지던스 주제와 관련하여, 비록 시간이 더 걸릴지라도, ‘부마민주항쟁’이 예술분야에서 ‘프랑스의 68년 5월 혁명’과 같은 효과가 창출될 수 있기를 기대했다.
프랑스에도 68년 5월 혁명이 일어났었다. 샤를 드 골 정부의 실정과 사회의 모순에 반대하고 저항하기 위하여, 처음에는 파리의 몇몇 대학교와 고등학교, 등의 학생 봉기로 시작했다. 이에 드 골 정부는 경찰력으로 진압하려고 했으나 오히려 혁명의 확산만 부추겨, 대다수 노동자 총파업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여러가지 이유와 상황으로, 1968년 6월 23일 총선이 이루어지고 나서도 드 골 정당은 더 강력해졌으나, 결국 이듬해 정권을 넘겼다. 비록 시위자 입장에서는 이 혁명 자체는 실패했으나, 68년 5월 혁명은 사회적, 정신적으로 엄청나게 큰 영향을 끼쳤다. 무엇보다 가치의 변화 즉, 보수적인 가치에서 현대적인 가치인 평등, 성해방, 인권, 생태환경 등의 변화와, 플라톤적인 존재론적이고 영원불변한 고전적 가치에서 헤라클레이토스적인 변하고 관계성이 우선되는 가치로 이동했다. 이는 현재까지 프랑스인들의 정신을 주도하며, 전세계에 영향을 주고, 특히 미술계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한국의 단색화와 일본 모노하의 주요 창립멤버 중의 한 작가이자 비평가인 이우환도 다음과 같은 말은 자주 반복한다:
“컨셉 중심의 산업주의가 최대치에 다다르면서 깨어지고, 1968년 5월 혁명이 일어나고, ‘해체’ (deconstruction)가 중요한 이슈가 되는 가운데, 이탈리아에서는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 프랑스에서는 ‘쉬포르/ 쉬르파스’(support /surface), 영국에서는 ‘안티 폼’ (Anti-Form), 미국에서는 ‘랜드아트’ (Land Art)처럼, 많은 운동들이 여러 나라에서 일어났고, 그 중에 하나가 일본의 ‘모노하’였다”
필자는, 한국 비평가 중의 한 명으로서, “부마민주항쟁”과 “광주민주화운동”이 프랑스의 68년 5월 혁명과 같은 가치 이동을 통하여 전세계 미술계에 영향을 주기를, 그러기 위해서 젊은 한국 작가들이 좀 더 심각하고 열정적으로 이 문제를 다뤄 주기를 바라고 있다. 수 개월간의 레지던스를 통해 비록 이번 작품에는 “부마민주항쟁”이 드러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씨앗 혹은 작은 영감이 되어 내년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에는 5월의 꽃으로 피어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이 ‘국가적인 이슈’가 ‘국제적인 이슈’로 발전되고 극복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 심은록 (SIM Eunlog, 미술비평가)
2019년 창원 리좀 레지던스를 마무리하며
창원 리좀 레지던스는 2013년 창동 레지던스로 시작하여 2018년을 거쳐 올해 세 번째 입주작가들을 맞았다. 작가들은 회화, 사진, 설치, 조소, 조각, 카툰, 영상 등 다양한 장르로 작업하는 작가들로 구성되었다.
그리고 올해 2019년은 부마민주항쟁 40주년을 맞아 민주성지로서의 지역의 특성을 심도 있게 이해하여 그 리서치를 작업으로 옮기는 프로젝트로 구상하였다.
입주 초기, 주어진 주제를 고민하면서 철학이나 역사, 인문학적인 관심의 폭이 확대되면서 발전되는 경향을 보였으며 나름대로의 작업방향을 설계하고 또 리서치를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자신의 기존 작업 기법의 변화를 시도하거나 장르적 결합이나 문학적 요소를 차용하기도 하고, 기법의 정밀도를 높이기 위해 새로운 재료 배합에 공을 들이기도 하는 등, 예술적 성숙을 위한 노력이 있었다.
그러나 참여 작가 대부분이 청년작가 인큐베이팅과 역량 강화를 위한 프로젝트성의 레지던스에 대한 경험이 없었고, 또 단계별로 구성된 일정을 소화하는 데 힘들어 했다. 특히 본 레지던스가 강점으로 생각하는 리좀 국제 레지던스 작가들과의 교류에 관심을 가진 작가는 극소수에 그쳤다.
창원 리좀 레지던스는 경남문화예술진흥원, 경상남도,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프로그램비용을 지원받고, 공간과 운영비 그리고 인건비는 대부분 직접 부담하며 프로그램들을 실행한다. 그리고 레지던스가 마산 원도심에 위치하고, 복합문화예술공간을 운영하며 또 지역의 국제 문화예술 거점역할을 하고 있어 작가들이 레지던스 기간 동안 이 점들을 잘 활용함으로써 작가적 능력을 한 단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며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는 레지던스 참여작가들에게 단순히 작업공간과 전시 기회를 제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여러 프로그램들을 통해 거주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더 깊이 이해하고 이를 통해 작가성과 예술적 역량을 최대한 고취할 수 있는 기회와 역량을 제공한다는 것, 나아가 레지던스를 통해 일정한 실력이 인정된 작가들에게는 해외진출의 기회까지 제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 숙소와 아뜰리에, 소정의 Fee와 작품재료비를 제공하고, 인큐베이팅-역량강화 프로그램, 교류-커뮤니티 프로그램, 특강, 세미나, 전문가 비평 워크숍, 도시알기 프로젝트, 전시, 오픈 스튜디오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전문가들과 함께 큐레이터를 중심으로 6개월 동안 실행하는 프로그램을 짰다. 이러한 프로그램 구성은 참여작가들이 작업의 주제를 다룸에 있어 보다 폭넓은 시야와 활동 영역을 갖도록 만들어주기 위한 것이다.
안타깝게도 올해 대부분의 참여작가들은 숙소와 작업공간, 소정의 Fee, 그리고 작품재료비 지원만을 원하는 작가들이었기에 결과적으로 ACC프로젝트가 지향하는 방향에 대해 작가들이 초기에 가졌던 관심은 점점 사라지고 시간이 갈수록 테마가 있는 작업을 어려워하면서 개인적인 선호에만 머무르게 되는 결과가 초래되었다.
결국 올해는 리좀 레지던스에서 양성된 작가들을 해외 레지던스 작가 교류 프로젝트와 해외 교류 전시에 참여할 작가를 선정하는 것 또한 불가능하게 되어 아쉬움이 많은 한해였다.
ACC프로젝트
예술감독 하효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