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SimEnglog MetaLab > SEM Art Magazine
물(物)에서 물(水)로…
심은록(SimEunlog MetaLab 연구원, 미술비평가)
우선 먼저 심문섭 화백님을 간략하게 소개하겠습니다.
‘반조각’을 주창해온 심문섭 선생님은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3회 수상, 일본에서 개최된 제 2회 헨리무어 대상전(1981)에서 수상, 프랑스 문화예술공로 훈장을 받는 등 해외 각국에서 일찍부터 작품성을 인정받아 활동하고 있습니다. 파리비엔날레를 시작으로 외국에서도 꾸준한 미술 항해를 하고 있습니다. 파리 비엔날레 3회 연속 참가, 상파울로 비엔날레(1975), 시드니 비엔날레(1976), 베니스 비엔날레 2회 초대(1995, 2001), 등 국제 무대가 좁은 듯 왕성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루브르 박물관 맞은편에 있는 팔레 루아얄 공원에서 열렸던 전시는 한국 작가로는 최초로 초대되어, 다니엘 뷔렌, 아니쉬 카푸어 등 세계적인 작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습니다. 그는 최근 한국에서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개인전으로는 가장 큰 규모의 전시를 개최했습니다. 근자에 페인팅 작업에 몰두하며, 생성과정과 환경 문제에 대해 토로하고 있습니다. 그는 내년 초 홍콩의 유명 갤러리인 tang comtemporary에서 초대전을 앞두고 있습니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설명보다는, 프린트의 첫 부분과 마지막 부분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더 상세한 내용은 프린트, 보도자료, 이어질 선생님의 설명 등을 참조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하 존칭은 생략하겠습니다.
반(反)조각의 조각: 물(物)에서
심문섭은 모더니즘 미술에 반대하는 ‘반조각’을 실행해 왔다. 그는 “작가의 말을 줄이고 물질에게 말을 시키고, 적당한 지점에서 물질 내부의 소리를 듣고자” 늘 귀를 열어 둔다. 모더니즘에 반대한 현대 서구 미술운동은 ‘4원소’라는 ‘근본 물질’ (공기, 물, 불, 흙)을 소급했다면, 심문섭은 오행설(나무, 불, 흙, 쇠, 물)의 ‘행’, 즉 우주만물의 ‘운행변전’(運行變轉)에 무게중심을 둔다. 그는 물질의 생성, 변화, 소멸의 반복을 작업에 드러낸다. 이러한 “순환성이야말로 살아 있음의 또 다른 이름”이라며, “윤회라는 긴 시간을 다 보여줄 수 없기에, 한 단면을 잘라서 드러내 보이는 것이 조각의 <현전 Opening Up>이고, 회화도 같은 맥락이기에 <제시 The Presentation>라는 제목을 붙였다”고 작가는 설명한다. 따라서 회화는 조각의 연장(延長)이다. 그는 이러한 생명성을 보여주기 위해, ‘물’(만물 物)로부터 하나 둘 씩 물질들을 꺼내어 작품으로 제시한다. 이하, 심문섭이 드러내는 ‘물질’, ‘색’ 등 각각의 오랜 윤회와 단면들을 소개한다.
테라코타 파트에서는 고대부터 발현된 인간의 유희본능, 그리고 청화 색이 도기 혁명을 일으킨 것에 대해 간략히 적었습니다.
테라코타: <토상 Thoughts on Clay>(1980년대 중반~1990년대 초, 테라코타)에서는 건축물 같이 진지하고 묵직한 작업으로 사유로 이끌기도, 혹은 어린아이처럼 유희본능을 일으키기도 한다. <토상 Thoughts on Clay>(2002, 테라코타)은 캔버스 대신 점토로 된 2D 화판 위에 작은 점토 오브제를 올리거나, 손가락 자국을 내거나 혹은 뾰족한 것으로 원을 그리며, 화판(2D) 위에 3D를 실행한다. 심문섭은 “흙을 주무르면 잠재해 있던 유희 본능이 작동한다”고 말한다. 점토가 아직 말랑말랑 하다면, 관람객도 점토로 다가가서 무언가를 해보려는 자신의 손가락을 막을 수 없으리라. 이는 고대 동굴에서도 볼 수 있는 인간의 유희 본능이다.
푸른 산화코발트(Cobalt oxide 청화 靑畫)로 그려진 자기(porcelain) 작품인 <섬으로>(Towards an Island, 2012)도 이번 전시에 출품된다. 그가 좋아하는 하늘을 담은 바다 색이다. 생명과도 같은 물을 상징하는 소중한 푸른색인 청화는 중동(이란)에서 태어나, 양질의 고령토가 있는 중국에서 발전되어, 전세계인들이 즐기는 청화백자가 되었다. 코발트는 높은 온도에서 살아남을 수 있어, 고화도유에 처음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을 뿐 만 아니라 안정적인 색으로 도기 혁명을 가져왔다. <섬으로>는 이러한 생명의 색인 ‘푸르름’의 긴 윤회 과정에서 한 단면을 보여준다. 불의 개입이 색의 변화에 지대한 영향을 주지만, 섬세한 농담의 표현이 가능한 것이 청화이다. <섬으로>를 세심하게 살펴보면, 붓의 움직임, 작가의 제스처, 힘의 강약에 의한 농담, 등이 관람객들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테라코타에서도 그는 입체작업, 평면에서의 입체 작업, 평면작업, 등을 통해 조각과 회화의 경계를 오간다. 이제 우리는 도자기의 청화에서 회화 <제시-섬으로 The Presentation-To the Island>의 블루로 이동한다.
‘반조각의 회화, 물로’ 파트에서는 심문섭이 처음부터 회화와 조각을 경계없이 해 온 것과 만물에서 물로 이르는 과정을 요약했습니다.
반(反)조각의 회화 : 물(水)로
심문섭의 회화는 ‘반조각’의 연장선상에 있다. ‘반조각’의 조각 작품은 여전히 조각이라는 분야에 남아있기에 ‘좁은 의미’에서의 ‘반조각’이다. 회화작품은 ‘넓은 의미’의 반조각으로 조각을 넘어 ‘예술’이라는 커다란 카테고리로 이동한다. 그가 반조각을 주창하며, 1973년과 1975년의 파리 비엔날레에서 종이, 캔버스가 중요 역할을 하는 평면적인 설치 작업을 했다는 것은 이미 회화가 반조각에 포함되었다는 의미다.
심문섭은 동서양의 모든 기본적인 마티에르를 사용하여 작업했고, 이제 남은 것은 물(水)로써, 그가 소년시절부터 줄곧 체감해 왔던 것이다. 조각에서 물도 가끔 사용했지만, 그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역동적인 ‘바다’를 제시하고 싶었고 회화 <제시>로 실현한다. 그렇게 '돌', '나무', '쇠', ‘흙’에서 역동적인 물인 '바다'로 순환된다. 심문섭의 예술(조각, 사진, 회화 등)에서, 프라마 마테리아(4원소)와 비교해서는 프리마 에네르기아로, 에너지 차원에서 말한다면 ‘순환’이, 생(生)의 차원에서는 ‘윤회’가 이뤄진다.
마지막 문단인 ‘푸른색에서 푸르름으로’는 ‘색’에 대한 윤회라는 심문섭의 독특한 해석이 담겨있기에 다시 읽도록 하겠습니다.
‘푸른색’에서 ‘푸르름’으로
심문섭의 푸른 작업은 첫 눈에도 친숙하다. 그는, 푸른색이 친화력이 있는 것은 “하늘과 바다를 그대로 안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의 블루는 우선 먼저 “파도의 푸른색”이다. 시적인 그의 설명이 이어진다.
“깊은 바다로부터 건져 올린 근원적 푸른색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욕망이 부서지는 하얀색”
이 하얀 색은 푸른색 가운데 동양화의 여백처럼 울림을 주는 공간의 색이다. 그는 물질보다는 그 안의 시간과 에너지 등을 현전하고 제시하는 것처럼, ‘색’ 그 자체보다는 “푸르름”을 강조한다. 그는 “젊음을 푸르름이라고 하듯이 싱싱하고 살아있고 움직이는 요소를 끄집어 내고 싶다”고 말한다. 푸르름은 하늘(욕망)을 품은 바다(근원) 에너지의 움직임을 시각화한다. 끊임없이 밀려드는 파도는 순간적으로 사라지나 영원히 반복되고, 구체적이나 애매하고, 리얼리티 적이나 허구성이 풍부하다. 그는 물(수성물감)과 기름(유성물감)을 한 캔버스 안에 사용하여, 이러한 이중성을 극대화한다. 서구 최초의 철학자 탈레스는 신화적인 감각의 세계를 이성에 종속시키기 위해 ‘물’(水)을 ‘아르케’(arche)로 보았다면, 심문섭은 이를 다시 자연으로, 감성으로, 끊임없이 역동적이며 싱싱한 푸르름으로 되돌리고 있다. 그는 서구의 물질 분석과는 다른 동양, 한국의 물질성을 작업을 통해 보여준다. 그가 다루는 근본적인 물(物)가운데 일부는 우주 탄생부터 그 시간성, 신비와 생명력을 담고있어 생각할수록 두근거림을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