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토리얼] '메종드프랑스'의 개원을 앞두고
제5회 리좀뷸땡을 마지막으로 올해 ‘예술로사업’이 끝이 난다. 참여작가들이 마지막으로 준비한 것은 메종드프랑스 개원을 기념한 발표회다.
메종드프랑스는 ‘프랑스의 집’이란 뜻으로 프랑스 문화원 성격의 공간이다. 창원에 프랑스 문화원 설립은 ACC프로젝트와 에스빠스리좀의 오랜 숙원이었다.
단체의 대표인 나와 서익진 교수는 프랑스에서 학업을 위해 오랜 기간 머물렀고, 이를 바탕으로 프랑스에는 한국 문화를, 한국에는 프랑스 문화를 알리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메종드프랑스는 우리의 이러한 경험을 적극 활용해 선진문화로 대표되는 프랑스 문화를 지역에 알리고, 프랑스 대사관과의 상호협력을 통해 국제적 문화와 예술을 교류하는 거점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사실 메종드프랑스 개원은 오래전부터 고민해온 것이었다. 그래서 일찌감치 프랑스 대사관과 문화원의 논의를 거쳐 언제든 개원할 수 있는 상태로 준비해 두었다. 다만, 코로나라는 전대미문의 사태가 터지고 외부 손님을 초대하기가 매우 조심스러운 상황이 지속되면서 개원이 미뤄졌다. 그러던 차에 ‘예술로’팀의 작가들(손상민, 박은혜, 박도현, 신근영, 김예림)이 합류하면서 현실화할 수 있었다. 프랑스문화원은 현재 서울, 부산에 있고 이들 문화원은 프랑스 본국이 지원하는 곳으로, 불어교육기관인 알리앙스 프랑세즈를 두고 있다. 그 외 지역으로는 인천, 대전, 대구, 광주, 전주 등이 있으며 주로 학술교류, 불어강좌를 중심으로 운영된다. 이들은 카페 등을 중심으로 행사와 모임을 가지고 있으며 민간이 운영하거나 대학에 소속되어 있다.
메종드프랑스는 에스빠스 리좀이 운영하고 있는 씨네아트 리좀, 갤러리 리좀 그리고 리좀 국제 예술인 레지던스를 중심으로 프랑스와의 문화예술교류 행사를 활성화할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을 활용한다는 측면에서 기대감이 크다. 지역 문화원으로서는 수도권으로부터 가장 떨어진 창원의 프랑스문화원을 통해 수도권 중심의 국제문화예술 교류 활동이 지역에서도 활성화되기를 바란다.
- 하효선
에스빠스리좀 대표, 씨네아트리좀 프로그래머
리좀 [현장] 메종드프랑스 문화주간을 준비하며 2
1편_ 기획부터 구상까지
2편_ 구상부터 준비까지
봄에 만나 가을이 되었습니다. 2021 예술인파견지원사업에 참여한 예술인들과의 이야기입니다.
박은혜(무용), 신근영(국악), 박도현(시각), 김예림(시각), 손상민(문학) 5명의 작가들은 6개월 동안 에스빠스리좀을 오가며 ‘리좀뷸땡’과 ‘메종드프랑스 개원’을 준비했습니다.
리좀뷸땡의 경우 이제 막 5회 차를 발행합니다. 그 사이 씨네아트리좀이 휴관을 맞았지만 리좀에서는 여전히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다양한 이야기꺼리들이 샘솟고 있지요.
겉으로는 깊은 잠에 빠져든 것처럼 보일지라도 말입니다.
‘메종드프랑스 개원 프로젝트’는 리좀뷸땡에 밀려 주목받지 못하다가, 여름을 전후로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습니다.
2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프랑스에서 유학활동을 해온 대표님의 오랜 숙원이었던 데다, 씨네아트리좀이 있는 창동 건물의 4층 전 게스트하우스 공간을 활용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별다른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기물이 그대로 있는 게스트하우스 공간을 어떻게 프랑스의 집 즉 메종드프랑스로 만들 수 있는지 난감하기만 했습니다.
그건 마치 신데렐라에게 드레스를 입혀주고 유리구두를 신겨주는 것과 같은 마법의 지팡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싶었지요.
80년대식 가옥구조를 가진 게스트하우스 공간에 처음 모인 날, 작가들은 난감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왜 여기가 메종드프랑스인가, 메종드프랑스는 무엇을 하는 공간인가, 우리가 프랑스와 무슨 관련이 있는가, 전시와 공연을 어떻게 이 공간과 연결시키는가, 전시, 공연이 어떻게 주제를 표현하는가...를 두고 끊임없이 질문을 주고받아야 했습니다. 공간은 으레 그것의 형태로서 기능을 내포한다는 전제를 적용해서였습니다. 카페에 가면 카페분위기라는 것이 있고, 카페로서 갖춰야할 최소한의 장비와 가구(테이블과 의자)가 있지 않습니까.
메종드프랑스도 메종드프랑스가 되려면 ‘프랑스적인’ 어떤 공간이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논의를 시작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질문을 바꾸었습니다.
이 공간은 이래야 한다고 했던 생각을 돌려, ‘이 공간은 무엇인가’ ‘이 공간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질문했습니다.
게스트하우스가 메종드프랑스가 되는 마법은 존재하지 않지만,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를 반복하여 공간의 성격을 규정하는 방식도 존재한다는 걸 받아들이게 된 것이지요.
그리하여 메종드프랑스는 메종드프랑스에서 일어나는 행위에 근거하여 공간이 기획, 규정된다는 중요한 실마리를 얻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공간을 규정하는 ‘메종드프랑스’라는 말이 주는 불확실성이 너무 커보였습니다. 단순히 프랑스문화원이라고 해도 알리앙스프랑세즈나 씨네클럽 정도는 떠오르는데, 메종드프랑스라니요. 자칫 잘못 들었다가는 오피스텔 이름 정도로 기억할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작가들 사이에서만이라도 ‘대안예술공간’이라는 말을 붙이기로 했습니다. 프랑스문화원에서 하는 규모가 큰 문화예술행사를 지향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역에서 할 수 있는 프랑스와의 예술교류사업, 프랑스 유명 예술인을 유치하는 레지던스사업, 지역의 예술인을 프랑스에 소개하는 작업 등을 담당하는 메종드프랑스에 ‘대안예술공간’이라는 표현을 붙인 것은 매우 적절하다는 생각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상상 속 ‘대안예술공간 메종드프랑스’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요? 작가들은 ‘프랑스’를 주제로 전시와 공연을 기획했습니다. 주제를 정할 때도 기획에 못지않게 많은 이야기가 오고갔습니다. 프랑스라고 하면 떠오르면 식상한 이미지의 재탕에서부터 멜랑콜리나 톨레랑스처럼 한국인에게 영향을 준 프랑스인만의 정서를 차용해보자는 이야기까지 끝도 없는 말들이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예술인 각자가 느끼고 생각하는 프랑스는 정말로 아주 달랐습니다. 프랑스에 대한 각자의 경험이 다르고 받아들인 이미지가 달랐으니까요.
그리하여 만들어 진 것이 ‘그들 각자의 프랑스’입니다. 전 게스트하우스 공간에 있는 다섯 개의 방을 다섯 명의 작가가 나누어 각 방에 한 명의 작가가 하는 개원기념 전시입니다.
다섯 명의 작가와 다섯 개의 방이라니 기가 막히지요?
‘그들 각자의 프랑스’에서는 무용, 국악, 시각예술, 문학 파트의 작가들이 각자 느낀 프랑스를 전시로 표현합니다.
전시는 27일(월)부터 29일(수)까지 3일 간 매일 16시부터 18시 사이에 볼 수 있습니다.
또 전시 기간 동안 작가들을 더욱 가까이 느낄 수 있도록 ‘예술인책 대여 서비스’를 진행합니다.
예술인책은 실물 책이 아니라 ‘사람책’입니다. 50분간의 예술인책 대출, 흥미가 당기지 않으십니까?
마지막 날인 29일 18시에는 국악연주를 배경으로 한 무용공연까지 시연할 예정입니다.
이렇게 ‘대안예술공간 메종드프랑스’ 개원을 위한 예술인들의 기획과정과 전시, 공연을 소개해드렸습니다. 최종결과물이 궁금하시죠?
26일(일) 정오까지 ‘신청자이름/인원/참여회차/대출을 원하는 예술인이름/연락처’를 댓글로 남겨주세요.
우리 그날 만나요. 제~~~발!
- 손상민(작가)
희곡, 뮤지컬, 동화, 에세이...
장르불문 글쓰기로 살아가는 전업 작가다.
나무와 바다 출판사, 쓰는책방도 운영한다.
니스의 파도
메종 드 프랑스 라고 했을 때 난 망설임도 없이 니스의 바다가 떠 올랐다.
2003년 프랑스 니스에 있는 피카소 박물관으로 초청공연을 다녀왔다.
이성자화백의 전신 오픈 기념 공연이었다.
니스의 푸른 바다와 그날 입었던 분홍색 치마 저고리, 그리고 지전을 흔들던 나의 움직임은 프랑스인들로부터 큰 박스를 받았다.한국문화에 대한 자부심 또한 나의 가슴을 울렸다.
이 때 니스의 바다가 가슴 한켠 자리를 잡았다.
이제는 그들의 문화를 여기 한국에서 나눠보려고 한다.
이렇게 니스의 파도는 나에게 그리움으로 남아 있다. 물론 다시가고픈 마음이리라...
파도에서 느껴지는 잔잔함, 역동, 그리고 진정 ,여기 메종 드 프랑스에서 느껴보자
어느 파도가 그러하듯이 잔잔함, 역동, 진정은 다 있기 마련이다.
니스의 파도는 크게 3단계로 구성을 해 보았다.
니스의 파도는 회상도 있지만 소망도 함께 자리하고 있다.
어쩌면 추억의 기억과 희망일까?
다시가고 싶다라는?
잔잔함과 역동 그리고 진정은 내 삶 속에서도 계속계속 반복되는 일상처럼 자리 잡고 있기도 하다. 그렇게 난 나의 방을 니스의 파도로 꾸며 보았다.
나의 전시는 이렇게 니스의 파도를 닮은 부드럽고 잔자한 천으로 물결을 만들었다.
이번에 함께하는 춤 작업은 협업으로 이루어진다.
지정이라는 큰 타이틀 아래 각각의 이야기가 있는 방을 이리저리 담아내면서 몸과 마음으로 춤을 추려한다.
그리고 여기에 신근영 작가의 거문고 연주는 나를 더 역동적으로 움직이게 할 것이다.
춤의 시작이 되는 김예림 작가의 방 그리움의 불안도 기대가 크다.
늘 우리는 불안을 안고 살지만 다름의 불안이 어떻게 다가올지 나마저도 기대가 된다.
몇일 전 보내 온 김예림 작가의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나를 매료시켰다.
바게뜨가 보였고 아기자기 함의 아주 작음 소품이 나의 어린마음을 열어주는 듯 했다.
나를 진정시켜 줄 수 있는 박도현작가의 방은 들어가는 공간마저 나를 진정시키고 있다.
엄숙하다고 하기 보다는 경이로움이 더 나을까?
카타콤에서는 종교 속 모든 희망과 긍정을 끌어 올려 보고자 한다.
그리고 돌고돌아 난 다시 시작점으로 다가가려 한다.
회귀와 순환으로.....,
진정하리라,
- 박은혜
마산에서 활동하는 무용가 박은혜입니다.
영화와 함께~ Shall we dance?
도시로의 향수
사회·경제·정치 활동의 중심이 되는 곳으로써, 항상 수천·수만 명 이상의 인구가 집단 거주하여 가옥이 밀집되어 있고 교통로가 집중되어 있는 지역을 도시라 한다면, 시공 즉 농촌은 도시와 구별되는 사회 지리적 공간으로 주로 농업에 종사하는 주민들이 거주하는 곳이라 한다. 인구, 교통 등 분주하게 움직이는 동적인 요소가 상대적으로 적은 시골은 도시에 비해 한가롭고 여유롭다. 시골이 편안함, 고적함 등의 단어들로 대변되는 이유이다. 그래서 요양 등 정신적 물리적 휴식처가 되는 곳이다.
인구의 90%이상이 밀집된 곳인 도시는 시공의 나무만큼이나 우거진 건물과 개미만큼 많은 자동차, 반딧불이 보다 많은 현란한 조명이 있다.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에게는 안방이나 지하철에서 백화점의 물건을 구매하며 세계를 여행하는 작은 상자가 없으면 살 수 없는, 와이파이 안테나가 한 두 개 생길까 말까하는 시공에서의 삶이란 어찌 보면 서글픈 일이다. 도시의 화려함이 시골의 호젓한 풍경보다 안락하며 편안한 느낌을 준다.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라서인지 도시는 본인에게 성장의 밑거름이라 할 수 있는 곳이다. 어릴 때 아버지는 장사를 했다. 그것도 화려한 네온사인이 있는 가게에서, 그래서 네온사인 아래가 벼가 무르익은 황금들녘보다도 심리적 편안함이 찾아오는 곳이다. 논, 밭 밖에 없는 시골은 도시인의 휴양지라는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불안함으로 다가온다. 시골의 이질감, 도시를 벗어나면서 찾아오는 불안감이다. 시골 달빛이 도시의 네온사인보다 아름답지 않다.
그림1. 보여지는 보고싶은, acrylic on canvas, 116.7cm × 91cm, 2016 (2) 그림2. 시선의 삽입(도시) , 22cm×22cm, acrylic on canvas, 2016.
이전까지 줄곧 ‘기억’이라는 주제를 놓고 고민을 하면서 작업을 했다. 작업에 관한 고민이 타인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이제 어떤 작업을 할 것인가에 관한 고민을 자신에게서 찾기 시작했다. 모든 예술이 그렇듯 자신의 반성과 성찰에서부터 시작된 셈이다.
작업의 방향에 관한 기로에 설 때는 더욱 그렇다. 시골에 한동안 머물게 되었을 때 풍경을 그렸고 또 그렸다. 시골의 논과 논두렁, 밭의 고랑과 이랑을 그렸다.
논두렁의 끝과 이랑 끝자락 지점은 언제나 수평선으로 시야에 머문다. 저 수평선 뒤에는 언제나 험준한 골을 가진 산이 위압적으로 가로막고 있다.
그러나 시골 논 끝자락 지평선 너머와 험준한 산 사이에 거대한 공간이 있다. 그곳에는 현실과 이상의 세계 사이에 존재하는 중간계와 같은 곳이었다.
이것이 <보여 지는 보고 싶은>, <시선의 경계 너머로>,<시선의 삽입>과 같은 명제를 붙이는 이유다. 작품 대부분은 중간계에서 둥글게 생긴 무엇인가가 피어오른다.
둥근 형광색은 지평선 넘어 피어오르는 태양이나 밝음을 삼키고 사라지는 석양이 아니다.
화면 앞부분의 도식화된 논두렁은 도시의 차선과 닮았고, 중간계에서 피어오르는 둥근 색은 밤에 일기 시작하는 네온사인의 점등식 같기도 하다. 나무와 숲의 배경들 너머 저 멀리에 도시의 마천루가 보인다. 아니 사실은 고대 왕들이 사는 궁일지도 모른다. 실루엣만 보이는 건물 어쩌면 궁일지 모르는 이 모습은 자신이 보는 도시이다. 살고 싶은 도시다. 보여지는 그 무엇과 보고 싶은 그 무엇과의 관계 속에서 고민하는 곳이다. 푸른 혹은 붉은 계열의 배경위에 밝고 어두움만 더한 나무, 실루엣으로만 드러난 건물들은 작가가 살고 싶은 이상의 도시다. 시공에서 느끼는 도시의 향수는 지금까지 자신이 살았던 소시는 아니다. 도시에 살기를 갈구하지만 그 도시는 언제까지 살았던 도시가 아닌 작가의 이상화된 도시다.
대부분은 어두운 파란색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파란색은 마음을 고요함으로 이끄는 색이다. 일상의 관계에서 나와 자유로운 삶의 시작을 갈구하는 색의 의미이기도 하다. 작가는 “숲이나 나무에 가려진 혹은 길이 없는 들판 너머 도시의 모습은 아직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어둠과 같지만, 그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의 형상은 숨겨진 경계 너머의 이상향을 보이고자 한다.” 라고 했다. 분명 작품에서는 도시를 망향하지만 마음의 도시를 찾듯 작품을 통해 스스로의 유토피아를 찾고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이상향에 대한 갈망은 가상의 공간을 형성하는 배경이 되었고 지금의 작업은 인간이 가진 본질적인 욕구와 과학기술의 발달이 접목하여 만들어지는 가상의 공간 즉 컴퓨터 속에서 프로그래밍되어 나타나는 이미지들의 연출을 진행하고 있다.
그림3. Landscappe(between morning and evening)#_series., 72.7cm×50cm, acrylic on canvas, 2018.
- 박도현(시각 예술인)
"유행하는 옷은 안 입는다.
그렇다고 앞서나가지도 않는다.
평범히 갈 길을 가는 사람이다."
Light & Life
ㅣ파리의 빛
Paris ,
어릴 적부터 가보지 못한 파리를 동경하고 있다. 우연히 지인의 대학시절 파리여행담과 사진을 보게 되었다.
그 속에 파리는 화려하고 아름다웠으며 꼭 한 번쯤은 가보고 싶었다.
나의 파리의 밤은 깊다. 어둠이 깊은 게 아니다. '빛'이 깊다.
에펠의 빛은 파리의 랜드 마크가 되어 빛을 발한다. 파리의 빛은 밤낮이 다르고 새벽과 황혼이 다르며 어느 위치에서 보느냐에 따라 수만 가지 다른 모습을 연출한다.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찍힌 파리의 모습은 '빛의 도시'를 연상케 한다. 격자 모양의 도심 거리가 한 눈에 들어온다. 온통 환한 불빛으로 가득하다.
한 줄기의 빛이 비칠 때 우리는 빛에 대한 소중함과 감사를 느낀다.
빛은 밝고 따뜻하며 희망적이다.
나는 빛에 대한 작업이 하고 싶었다. 이번 작업은 파리의 빛에 대한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