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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옥살이 배상금까지 넣어 영화관 만든 이유관리자작성일 23-12-13 13:04


2023.12.07   오마이뉴스
출처: http://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_m.aspx?CNTN_CD=A0002983890&CMPT_CD=MST17&fbclid=IwAR0hdWbtFwXFsQfEAchm0i_OvuDZ8iE4z2uM2jwvOwJh1X7Adxwd3zAZcOs_aem_AYCHssPNXFdEjb9oJJWJ_G0VHBSSszWBY6jKHmrcrW20MJoQ6BdD83OjoMkgFbKfoqI

1990년대 말 복합상영관 이른바 대형 멀티플렉스가 등장하면서 한국 영화 산업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그러나 동시에 단관극장의 시대가 막을 내렸다. 단관극장은 스크린이 하나만 있는 극장을 말한다. 그러니까 멀티플렉스가 생기기 전 우리나라에 있던 모든 영화관이 단관극장이었다. 이름도 모두 달랐던 단관극장들은 이제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고 사라진 건 아니다. 저마다의 자리에서 어떻게든 생존하기 위해 노력하며 사람들의 '영화 볼 권리'를 지켜주고 있는 극장들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예술영화전용관'이다. 개발 논리와 대형자본의 위협 속에서도 우직하고 묵묵하게 버텨내고 있는 극장, 그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이번 연재는 노회찬재단과 한국예술영화관협회와 함께 기획했다.[기자말]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은 마산, 창원, 진해가 통합되기 전 마산의 중심지였다. 젊은이들이 모이고 밤새 불이 꺼지지 않던 거리는 세월이 흐르면서 골목마다 스산한 추억만 남긴 채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졌다. 그러다 거짓말처럼 골목에 다시 생기가 돈 건 2015년.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창동이 예술촌으로 변모하면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한 것이다. 골목골목 건물들을 새롭게 단장했고,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그곳에 '씨네아트 리좀'이 문을 열었다. 하효선 대표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씨네아트 리좀'을 지키고 있다.
 
"골목을 살리고 싶었는데 그게 영화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리좀(Rhizome)'은 수평으로 뻗어나가는 뿌리줄기를 일컫는 생물학 용어다. '수직'이 아닌 '수평'이란 뜻에 마음이 간다. 모든 문화는 평등하게 공존해야 한다는 말일 테다. 그것이 분야가 다르건 지역이 다르건 말이다. 씨네아트 리좀은 예술가들의 작업공간인 '레지던스 리좀'에서 시작했다. 하효선 대표는 생기 잃은 구도심에 예술가들을 끌어모아 창동이란 공간의 추억과 문화를 살려내고 싶었다. 기꺼이 창동 예술촌에 입주했다. 사람이 모이면 뭐라도 할 수 있겠지 싶어 지하1층 지상 4층 건물에 사비를 들여 레지던스를 만들고 예술가들을 불러 모았다. 그렇게 모든 것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그냥 공동체 상영 같은 거였어요. 극장이 생기기 전부터도 우리가 영화를 봤거든요. 예술영화를 중심으로 작품성 있는 영화를 함께 보자고 해서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영화 해설과 함께 보는 '창원씨네마떼끄'와 독립영화를 보는 '창동독립영화상영회', 그리고 프랑스영화를 보는 '목요영화'같은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활동했어요. 이후에 창동예술촌 사람들도 보러오고, 시민들도 알고 찾아오고 한 거죠. 그때는 DVD를 사서 영화를 틀었어요. 그걸 한 몇 년 한 것 같아요."
 
그러다 창원시가 지원을 중단하면서 위기가 닥쳤다. 건물에서 퇴거 명령이 내려진 것. 손 놓고 있을 수 없었다. 하효선 대표는 직접 건물주를 만나 계약을 연장하고, 사비를 들여 지하에는 씨네아트 '리좀'을 지상에는 레지던스, 게스트하우스, 갤러리 그리고 카페 등을 만들어 복합문화 공간으로 새롭게 정비했다.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다고, 남편이 긴급조치 9호에 연루되어 1년 6개월 옥살이를 한 적이 있어요. 그걸 재심으로 무죄 판결 받았는데, 배상금이 그때 딱 나온 거에요. 그걸 극장 만드는 데 쏟아부었죠. 정확하게 2015년 12월 23일 '씨네아트 리좀'이 문을 열었어요. 지금은 예술영화전용관 지원사업을 통해 지원을 받고 있죠."
 
그러다가 2017년 <옥자> 사태가 터졌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를 멀티플렉스들이 상영 거부를 하면서 영화를 일반 극장에서만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리좀'에도 영화 <옥자>를 상영해 달라는 문의가 빗발쳤다. 하효선 대표는 기쁜 마음에 배급사에 연락했지만, 거기서 또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영화를 받으려고 보니까 우리 극장에서는 틀 수가 없는 상황인 거예요. 그때 우리는 디지털 영사기가 없었거든요. 영화는 점점 디지털 방식으로 만들어지는데, 극장에는 제대로 된 영사기가 없어서 상영할 수 있는 영화가 한정적이다 보니까 극장 운영이 심각한 상태였어요. 폐관을 결정했죠. 그런데 그 소식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기 시작한 거예요. 그러면서 창원시가 영사기 임대료 지원을 결정했고 <옥자>를 상영할 수 있게 됐죠. 물론 극장 문도 안 닫았고요."

"극장 사라지고, 골목 사라진다? 그게 지역소멸"

하효선 대표는 지역 문화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극장의 존재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 극장을 지역문화 형성과 교류의 거점으로 활용하는 건 당연하다는 것. 개봉영화를 상영하는 것도 극장의 역할이지만, 지역에서는 영상문화 활성화를 위한 거점으로 활약할 수 있는 공간이 예술전용극장 뿐이라는 얘기이다.
 
"지역마다 정체성이 있어요. 그런 지역의 아이덴티티를 순환시키고, 강화하고, 발전하도록 하는 것이 바로 영화가 가진 힘입니다. 영화를 가지고 할 수 있는 것도 무궁무진합니다. 각종 영화제는 물론이고, 기획전과 테마 영상 상영도 극장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지역에 있는 작은 영화관들을 살려야 해요. 예술영화는 상업영화와는 역할 자체가 다릅니다. 프랑스는 예술영화관과 상업영화관의 비율이 1대 1이에요. 단순한 재미가 아닌 생각과 문화의 확장을 위한 고민을 던져주는 역할을 예술영화관이 하는 겁니다."
 

씨네아트 리좀은 올해로 5회째 영화제를 개최하고 있다. '창원국제민주영화제가' 그것이다. 꾸준히 크고 작은 영화들이 참여하고 있다. 올해도 7개 섹션 60편의 영화가 시네아트 리좀을 비롯 주변 곳곳에서 상영되었다.
 
"창원이 사실 민주주의의 성지예요. 1960년에 3·15의거가 있었고, 1979년에는 부마민주항쟁이 있었던 곳이거든요. 그것이 우리 지역의 정체성이죠. 이걸 알리고, 브랜드화 하고, 대중화하는 역할을 씨네아트 리좀이 하고 있는 것이죠. 앞으로도 각 극장은 영화제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기획전을 하건 영화제를 하건 그 극장이 있는 지역의 정체성을 담아내고 그것을 통해 사람들이 모이고 생각이 모이고 이야기가 모여 더 나은 것이 만들어지는 문화의 중심이 극장이면 좋겠다는 거죠."
 
흔히 사람들은 '언제 밥 한번 먹자'라는 말로 인사와 안부를 대신한다. 이것이 '언제 같이 영화 한번 보자'로 바뀔 수 있을까. 하효선 대표는 밥 먹고 함께 이야기하듯, 영화를 보고 각자의 생각을 나누며 지역에 사람들의 말소리와 이야기꽃이 피어나길 바란다.
 
"일상문화생활과 계획문화생활이라는 게 있어요. 공연이나 전시는 계획문화생활에 속하고, 영화는 일상문화생활에 속하는 건데, 이 일상에 속하는 공간이 없으면 안 되잖아요. 내가 어쩌다가 영화를 좋아하는데 내가 사는 지역에 영화관이 없네? 하면 재수가 없는 거고, 내가 어쩌다가 영화관이 있는 부산에 살고 있네? 그러면 재수가 좋은 거고. 이게 바로 문화적 불평등이지 뭐겠어요? 보고 싶은 영화를 내가 사는 곳에서 볼 수 있는 권리, 그건 공공의 영역에서 보장해 줘야 하는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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