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의 특징을 ‘콜라주’로 보며, 동서양의 문화예술을 ‘결’과 ‘층’으로 설명하는 독특한 관점의 미술비평가 심은록(SIM Eunlog, 리좀-심은록 미술연구소 소장, 동국대 겸임교수)을 만났다.
1998년 도불이후 현재까지 프랑스를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UNESCO(파리 본부, 2015, 2018), UNOG(제네바, 2017), 패럴림픽(강릉올림픽공원 내, 2018), FINA(수영경기장 내, 2019), 등에서 수십회의 국제전을 기획했으며, 신간 『미래아트와 트아링힐』을 비롯하여, 『양의의 예술, 이우환과의 대화 그리고 산책』, 『세상에서 가장 비싼 작가 10』, 등 수십 권을 저술했다. 5월 말, 프랑스에서 와서 자가격리 중인 그와 비대면 인터뷰를 가졌다.
Q. ‘한국현대미술을 위한 자료연구’와 동국대 강의 때문에 한국에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이우환과 이성자 관련 저서를 제외하고는, 외국 작가론을 주로 집필하신 것으로 아는데, 한국 작가론으로 주제를 돌리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제 글은 가능한한 ‘비교연구’를 바탕으로 쓰여지기에, 한국작가론을 위한 선제작업으로 외국작가론을 연구했습니다(Vice versa). 이러한 집필목적은 제가 박사학위를 받은 후에 프랑스에 머문 이유와 동일합니다. 몇몇 재불 작가님들께서, “200여명의 한국 작가들이 프랑스에 있고, 이들이 다른 국적의 작가들보다 못하지 않다. 그런데, 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느냐? 바로 이들을 제대로 소개할 미술비평가와 전시기획가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이를 위해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습니다. 김창열 선생님은 제게 가장 먼저 책집필(미간행)을 요청하셨고, 이우환 선생님은 제가 미술비평가로 일할 수 있도록 그 바쁜 시간을 쪼개어 지도해 주셨습니다. 박서보 선생님께서는 한국의 중요 원로 작가님들을 소개시켜 주시며 독려해 주셨습니다. 이 분들이 저를 돕는 이유와 저의 프랑스 체류이유, 집필 동기가 모두 같다고 봅니다.
Q. 외국에서는 비평가나 기획자들이 작가들이 세상에 알려지는데 일조를 하는데, 박서보, 이우환 등과 같은 작가님들은 세계적이 되기까지 많이 힘드셨을 것 같네요.
A. 그만큼 많이 힘들고 외로우셨을 겁니다. 그래서 외국의 미술전문가들에게 한국작가를 제대로 소개할 수 있는 심도깊은 연구서의 필요성을 아신 것이죠. 제가 그 기초를 닦을 수 있기를 바라고, 유럽에서 20년 이상 체험하고 연구한 것을 알리고, 이를 통해 세계적인 한국 기획가와 비평가가 나오기를 바랍니다. 그 첫 발자국이 『미래아트와 트아링힐』인데, 에스더 김 관장님(아트플러스갤러리, CA. USA)께서 후원을 해 주셔서 제 기획의 “서문”이 출판될 수 있었습니다.
Q. ‘작가’로서의 이우환이 아닌, ‘선생’으로서의 이우환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A. 세상에서 가장 독특하면서도 실용적이고, 항상 비교연구적 방식으로 지도해 주셨습니다. 여건이 된다면 저도 똑 같은 방식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습니다. 선생님은 파리에 오실 때마다 매번 과제를 주셨는데, 최초 과제 중의 하나가, “무조건 세계적인 작가와 인터뷰를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다니엘 뷔렌, 아니쉬 카푸어, 일리아 & 에밀리아 카바코프, 무라카미 다카시, 히로시 스기모토, 아네스 바르다(영화감독), 마틴 파, JR, 쩡판즈, 가오싱젠(노벨문학상 수상자), 미셀 뷔토르(문학가), 등 백 번 이상의 인터뷰 후에야 선생님의 의도를 이해했습니다. 저는 그들을 인터뷰한 것이 아니라, 그들로부터 오히려 배움을 얻었습니다. 세계적인 다양한 안목을 배우라는 것이었죠. 그들은 각각 독특한 다른 관점과 이에 의해 구축된 세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매번 인터뷰때마다 다른 세상과 관점이 펼쳐졌습니다.
Q. 이우환 선생님께서 상기 분들을 소개해 주셨나요?
A. 제 스스로 한 명 한 명 인터뷰를 성사시키기 위해 노력했고, 그 과정에서도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인터뷰를 마친 후에는 선생님께 제가 준비한 평을 말씀 드렸고, 그러면 선생님께서 부족한 부분을 깨우쳐 주시고, 좀 더 사유하며 깊이 다뤄야할 부분을 알려주시곤 했습니다.
뷔렌의 발레 무대장치 덕분에 만나게 된 장 누벨 건축가.
뷔렌 선생님은 “광주디자인비엔날레 광주FINA세계수영선수권대회 기념 특별전(2019)”을 위해,
전폭적인 도움을 주셔서,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빛을 전시할 수 있었다. 필자는 그에게 엄청난 마음의 ‘빛’과 ‘빚’을 지고있다.
2014.5.15. 바스티유 오페라에서.
Q. 『미래아트와 트아링힐』은 그 인터뷰들과 관계가 있나요?
A. 예. 하지만, 백 여개의 관점을 모두 전개할 수는 없어서, 그 중의 하나인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접근했습니다. 서구문화는 플라톤부터 본격적으로 ‘질적 층’위에 쓰여졌고, 17세기 과학혁명 이후로는 ‘양적 층’ 위에 세워졌다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문화적 구조와 생성조건 하에서, 작가들의 ‘파라노이아 자화상’을 분석했습니다. 반면에, ‘결’과 관련하여, 작가들의 ‘스키조프레니아 자화상’을 다뤘습니다. ‘결’은, ‘살결, 나뭇결, 물결, 숨결, 어느 결, 잠결, 결맞는 상태(coherent), 등처럼 수평적이며 앞의 수식어에 따라 변합니다.
Q. ‘결’이 더 근사하게 들리는데요?
A. 현재가 ‘결’에 좀 더 가까운 구조적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가 책에서도 여러 번 강조한 것은, ‘층’과 ‘결’ 개념이나, ‘파라노’와 ‘스키조’ 용어는 상징적으로 사용됐으며, 그 둘 가운데 어느 쪽이 우선하지도 우월하지도 않다는 것입니다. 각 시대의 에피스테메에 따라 혹은 언어 및 권력구조에 따라 무게중심이 바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파라노와 스키조는 둘 다 ‘병적 현상’입니다. 그래서 힐링아트가 요청되는데, 그 현대적 원조를 저는 두 명의 샤먼인, 요세프 보이스와 백남준으로 보았습니다. 코로나 시기를 겪으며, 아트의 근본적인 역할이었던 ‘힐링’의 역할을 더 깊이 분석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코로나가 4차산업혁명을 앞당겼기에, 자연스럽게 ‘미래아트’로 연결이 되었습니다.
A. 저는 현대미술이 크게 두 종류 이상의 콜라주로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화면 위에다 직접 시각적인 이질감을 대치시킨 유럽형 다다이스트들의 콜라주와, 미국형 뒤샹의 콜라주입니다. 특히, 중요한 것은 마르셀 뒤샹이 그의 <샘>(남성용 소변기)에다가 ‘개념’을 콜라주했다는 것입니다. 헤겔이 개념화로 인한 미술의 종말을 말했는데, 바로 그 ‘개념’을 하나의 오브제에다가 콜라주 한 것은 기가 막힌 반격입니다. 헤겔의 말대로 근대미술은 종말을 맞았으나, 뒤샹 덕분에 현대 미술의 다원성이 폭발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또다른 ‘샘’에 디지털 세계(AI, AR, VR, NFT, 등)가 콜라주되고 있습니다. 현대로 소급된 제3의 또다른 근사한 콜라주가 있는데, 바로 조선 후기의 ‘책거리와 책가도’ 입니다.
Q. 현재, 뒤샹형의 콜라주를 적용하여 작품을 하는 작가로는 누가 있나요?
A. 최근 파리에서 감동적인 전시를 보여준 사라 제는 일상적 풍경과 레디 메이드를 사용하여 3차원적 콜라주(아상블라주)를 했고, 동양적인 여백을 도입하여 새로운 차원의 콜라주로 발전시켰습니다. 데이비드 호크니는 오랜 기간 연구하며 우표수집하듯이 관점을 콜라주했고, NFT와 관련하여 세계적 이목을 끈 비플의 <매일, 첫 5000일> 역시 콜라주형 작업이었습니다. 제가 이처럼 콜라주를 시대현상이라고 보는 것은, 콜라주의 요소 요소는 고유한 이질감과 자체의 시공간을 보유하면서도, 동시에 또다른 시공간에서 다른 요소들과 함께 공존한다는 사실입니다.
Q. NFT art에 미술계는 어떻게 반응하고 있나요?
A. 방금 언급했던 호크니를 비롯한 많은 유명작가들은 이에 반대합니다. 사실 저는 호크니가 좀더 설득력있게 반격하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는 NFT art는 “컴퓨터에서 작업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했는데, 그 위험성은 실제 작품에서도 화재, 손상, 등으로 가능하기에 무의미한 비판입니다. 또한 "비플의 작품이 바보같고 잘 모르겠다"고 했는데, “바보같거나 모르겠다”는 것 역시 적절한 비평적 용어가 아닙니다. 반면에, 중견 작가들은 관심은 있는데, 여러 이유로 눈치만 보며 어떻게 전개될지 주시하고 있는 듯 합니다.
Q. NFT art는 미래아트의 한 유형이 될까요?
A. 저는 비플의 상기 작업이 센세이션을 일으킨 주된 동작인인 크리스티가 ‘물꼬’를 튼 것이라고 봅니다. 외국 유명 갤러리들은 이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작가도 물색하고, 상황을 살펴보고 있는데, 많은 작가들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현재처럼 예술이 자본에 휘둘리지 않도록, ‘물꼬’의 조절기가 옥션이나 미술시장에 넘겨지면 안된다는 사실입니다. IT인프라가 강한 한국의 미술계가 공개적으로 그리고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모아 최초의 NFT전시와 포럼, 등을 개최했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이 호크니의 말대로 잘못된 것이라면, 얼른 그 대안책을 찾아야 하고,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면 앞질러 가야합니다. 지금이 바로 그 기회이며, 여기서 ‘아차’하면 또 늦어져서 서구미술계를 쫓아가느라 허둥될테고, 미술은 자본하에 놀아나게 됩니다. 세계 곳곳에서 작가들, 갤러리스트들, 미술전문가들 등은 ‘코로나 퇴치’라는 경주용 스타트 건이 울리기를 기다리며, 달릴 기세로 크라우칭 스타트 자세로 있습니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그래서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는 바로 이러한 콜라주형 심포지엄을 요청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