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글
검은 물고기 무리가 환영처럼 지나간다. 무채색의 형상이 마음 한 구석에 둔탁한 울림을 남긴다.
양서준에게 물고기는 일종의 자기 현시(顯示)다. 어느 날 수조에서 헤엄치던 물고기와 눈을 마주친
(마주쳤다는 느낌을 받은) 그는 처음으로 타자 즉 물고기를 통해 스스로를 인식하게 된다.
그날의 경험을 모티브 삼아 시작한 물고기 연작 <마주하는 것에 대하여>(2017)는 검은 물고기 무리가 축소 혹은 확대된 형태로 종이 위를 헤엄쳐 다닌다. 몇몇 작품에서는 물고기의 눈이 도드라져 보일지 모르나, 대부분의 작품에서 물고기의 눈을 보기 위해 관객은 눈을 크게 떠야만 한다. 그에게 물고기의 눈은 스스로를 비추는 거울이면서 동시에 관객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창이다.
그가 목탄을 재료로 작업하기를 고수하는 이유 역시 물고기의 눈을 보다 잘 표현하기 위해서다. 목탄은 흑연과 비슷하지만 흑연처럼 빛을 반사하지 않고 흡수한다. 목탄을 덧칠하다보면
‘심연’에 닿을 수 있을 것 같았다는 작가의 말처럼 그것은 검지만 닫힌 어둠이 아닌 열려있는 어둠에 가깝다.
그가 의식하던 의식하지 않았던 인류 역사상 물고기는 종교적 의미에서 해석되어 왔다. 기독교에서 물고기는 신을 믿는 자의 표식이었고 불가에서 물고기는 수행자가 닮아야할 상징적 동물이었다. 물고기를 수행자에 비유한 데는 눈꺼풀이 없어 언제나 두 눈을 뜨고 지내야하는 물고기처럼 잠들지 않고 정진한다는 의미가 강하게 덧입혀졌기 때문이다.
작가는 ‘마주하는 것에 대하여’를 주제로 눈 ‘마주침’에 몰두한다. 서로의 눈을 바라보는 것이 나와 타자를 마주하는 유일한 방법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우리는 서로의 눈을 통해 자신을 보고 그 속에서 나조차 모르는 나와 마주할지 모른다.
_ 손상민(극작가, 평론가)
마주하는 것에 대하여, 180x50cm, 종이에 목탄, 2018
마주하는 것에 대하여, 46x160x60cm, 목재, 2018
시간이 지나도 괜찮지 않은 것들이 있었다., 영상작업스틸컷, 2018
오승언
약력
[학력]
2019 목원대학교 미술대학원 기독교미술 전공 졸업예정
2016 목원대학교 미술학부 기독교미술 전공 졸업
[개인전]
2018 Rhema展
2017 대전 첫술프로젝트 선정 개인전 ‘도전장’
2017 LOGOS展
[단체전]
2018 PAF2018 (바스티유 디자인센터, 프랑스 파리)
2018 M.A.C.A 그룹전시
2017 천안 하늘중앙교회 초대전
2016 LOGOS 그룹전시
2016 도안동행전 그룹전시
2015 소격동 165 프로젝트 (SOCIUS GALLERY 주관)
[레지던시]
2018 창원 리좀 레지던스 (경남문화예술진흥원 지원)
작가노트
저는 의류의 재봉선을 이용하여 불균형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인간상과 사회, 종교의 모습들을 시각화 하여 우리가 놓치고 잃어가는 모습들을 제시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설치 작업은 과거의 특정한 행위와 모습을 차용하고 현재의 의류들을 오브제로 사용하여 지금, 현재 우리들의 모습을 돌아보게 합니다. 그로 인하여 자신이 잃어버린, 잃어가고 있는 모습들을 인지하게 하고 성찰하게 합니다.
사진의 작업은 그 껍데기만 남은 의류를 입은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어 불균형의 외형적인 틀과 껍데기는 우리들의 온전한 모습을 이루지 못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 합니다.
저는 리좀 레지던시에서 어떤 작업을 할까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는데 이 지역의 특성과 지역 안에서의 이야기를 저의 개인적인 경험과 함께 같이 해 나가면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마산에서 일어난 민주화 운동인 3.15의 이야기를 제가 경험한 현재의 집회와 운동의 모습과 함께 하기로 결정하고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사실 저는 고등학교 시절 마산항 근처의 미술학원에서 입시를 준비했습니다.
그렇기에 3.15의거탑 주변을 매일 지나갔는데 그때는 정말 아무 관심과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지금 10년정도 뒤에 다시 3.15의거탑을 바라보게 되었고 조사를 하고, 알아보니 상당히 의미 있는 중요한 상징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중요성에 비해 그 탑과 동상이 너무 외면 받고 잊혀져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치 3.15의 정신과 모습들이 지금, 기념탑과 동상들처럼 잊혀지고 사라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이런 느낌이 왜 드는지 왜 생각이 되는지 성찰해 보니 제 마음과 모습에서 이미 3.15가 무엇이고 왜 중요한 일이었는지 관심조차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3.15의거 기념 탑 동상의 모습을 사용하여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고 3.15의 숭고한 정신과 모습들이 지금 현재 우리들에게 있는지 물어보는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현재의 우리들의 많은 집회와 운동에서 경험하고 본 많은 이야기들의 목소리와 모습에 무엇을 잃어버린 모습이 아닌지 돌아보는 작업으로 저와 저의 작업을 관람하는 관람객들이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길 바라며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비평글
오승언에게 기독교미술이란 성경의 역사를 재현하는 것이 아닌 말씀을 따르려는 행위 전체를 포괄한다. 그는 현대미술이라는 장르를 통해 자신을 포함한 기독교인들에게 겉치레에만 집착하는 종교생활에 대한 반성을 촉구한다.
의류의 재봉선만 남긴 채 속살을 훤히 드러낸 남여 마네킹을 소재로 한 작가의 졸업 작품인 <흰 옷>(2015)은 요한계시록 3장 4절에 나오는 신의 말씀을 행하는 자들이 입었던 ‘흰 옷’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자신에게 허락된 흰 옷이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한 이 같은 설치작업은 이후에도 재봉선을 지탱하던 마네킹을 버리고 옷걸이를 이용했다가 섬유강화플라스틱을 입혀 천장에 매단 낚싯줄로 고정시키는 현재의 방식에 이르렀다. (그의 작업은 리좀 레지던스에 입주해 작업한 <소소사의 3.15> 작품에서도 반복, 변주된다.)
작가의 주된 메시지는 알맹이가 빠지고 틀만 남아있는 종교인에 대한 비판이지만, 이러한 이중적인 삶의 태도는 비단 특정 종교인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주지하다시피 신이 사라진 시대에 현대인의 텅 빈 주체를 채운 것은 다름 아닌 물질이었으니 말이다.
그는 무채색으로 표현한 교회 내부에 목사 세 분의 설교와 찬양이 동시에 흘러나오는 음향을 장치한 <Sunday Christian>(2017)이나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현대화한 <피에타>(2018) 등을 통해 기독교미술을 바라보는 대중의 왜곡된 시각을 바로잡는다.
작가가 자신이 전공한 기독교미술이 중세를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미술과의 접목을 시도하는 미술이라고 전하는 것처럼, 오승언을 통해 우리는 기독교미술이라는 ‘오래된 미래’를 다시 주목해 볼 수 있다.
_ 손상민(극작가, 평론가)
그날, 지금, 우리, 160x180x180cm, 의류에 재봉선, 2018
껍데기(Shell), 20x20cm, 캔버스틀에 재봉선, 2018
벌거벗은 임금님, Digital printing, 2018
이수정
약력
[학력]
2018 창원대학교 미술학부 조소 전공 졸업
[단체전]
2018 인터체인지 (조현욱아트홀, 창원대학교)
2017 2018 희망 빛거리 축제 (성산아트홀, 창원)
2017 진해 해군사관학교 초대전시회
2017 <최수환X이수정> 이인전 (대안공간 로그캠프, 창원)
2016 창원대학교 미술학과 동문전시회 <수조각회> (성산아트홀, 창원)
2016 창원중앙역 문화갤러리 전시
2016 구허언展 (space1326, 마산)
2015 창원대학교 문화예술사업단 <new global empathy>전 (마샬갤러리, 몽골)
2015 창원대학교 문화예술사업단 <창원 도큐멘타> 기획전시 (마린갤러리, 부산)
[레지던시]
2018 창원 리좀 레지던스 (경남문화예술진흥원 지원)
작가노트
우리는 저마다 일상 속의 여러 가지 풍경을 보며 살아간다. 매일 같은 목적지를 오가며 보이는 풍경들에 익숙해져 스마트폰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들여다보지만, 문득 매일 보아온 것들이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무언가를 짓고 부수고 새로 짓는 모습은 우리에게 이미 일상적인 풍경이 되었지만 쉽게익숙해 지지 않는 풍경이다. 빽빽이 세워진 높은 건물, 밤새 꺼지지 않는 불빛 속에 사는 우리네들에게 풍경이란 어떤 모습일까.
| 리좀 레지던시에서 작업한 작품에 대하여
어느 무렵 나에게 보이기 시작한 것은 ‘아파트 풍경’이다. 어릴 적 당연하게 아파트를 보며 자라왔고, 내가 나고 자란 창원 지형의 특성상 산도 많이 보며 자라왔다. 지금 우리가, 내가 보고 있는 풍경은 어떤 모습일까 생각하게 되었다. 작은 동네들이 없어지고 지어지는 높은 아파트, 산을 가릴 만큼 높게 지어진 아파트와 밤하늘 별보다 빛나는 타워크레인의 불빛들. 철거되고 지어지는 반복적인 과정과, 복사/붙여넣기 한 듯한 아파트 이미지를 주제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 도시의 풍경에 대해 작업하고 있다. 리좀에서 작업한 미디어 작품은 3D 프로그램과 게임 개발 엔진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관람자가 직접 작품을 조작하며 게임하듯이 즐길 수 있게 만들었다. 수많은 아파트들이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고 계속해서 공사 소리가 들리는 가상의 공간을 관람자가 직접 움직이고 소리를 들으면서 구경할 수 있다. 이것은 화면으로 보이는 가상의 공간이지만 아파트 형태부터 소리까지 실제의 자료를 수집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가상이면서 가상이 아닌 공간이 된다. 보는 이가 작품을 보고 다시 창밖을 보았을 때 익숙함과 낯선 무언가의 감정을 느꼈으면 좋겠다.
비평글
이수정에게 작품은 일상의 연장이면서 비일상의 단면이다. 그의 작품에서 우리는 흔히 바라보던 풍경 이상의 것을 발견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아파트를 디지털콜라주로 작업한 <Ciiiiiitiiiiiiy 1, 2>(2018)에서 그가 보여준 것은 있는 그대로의 아파트이지만 실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아파트 사진을 찍은 후 컴퓨터 작업을 통해 아파트만을 복사하기, 붙여넣기를 반복해 새롭게 단지를 만들었다. 흥미롭게도 그것은 매우 교묘한 ‘복사’여서 눈여겨보거나 직접 묻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다. 어쩌면 대다수 관객에게 무덤덤하게 다가오는 그의 작품에는 사실상 복사하듯 찍어내는 아파트 건설의 단순무식하면서도 무자비한 건설방식에 대한 날선 시선이 담겨 있다. 게다가 아파트는 ‘그린’이라는 이름을 표지판처럼 달고서 버젓이 깎아놓은 산중턱에 자리해 그 자체로 아이러니한 상황을 연출한다.
현실 이면에 감추어진 폭력성과 아이러니를 드러내는 작품은 작가에게서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나무 한 면에 나무 조각을 붙여 설치한 <나무 위에 나무쓰레기>(2016)는 쓰레기가 되어버린 나무 조각들을 실제 나무에 붙여놓고 나무의 전면에서는 나무 조각이 보이지 않도록 설치했다. 제목 그대로 나무라는 본래적 생명을 잃어버린 나무 쓰레기가 여전히 생명력 있는 나무에 다시 붙은 모양새는 현대문명에 의해 잘려나간 무언가를 상징적으로 그려보도록 한다.
작가는 이제 아파트를 소재로 한 디지털콜라주 작업에서 나아가 관객들이 직접 아파트 단지를 걸어 다니며 주변 소음을 들을 수 있는 미디어 작품을 선보인다. 3D 프로그램과 게임 개발 엔진 프로그램을 이용한 이 같은 장치는 게임처럼 작품을 감상하게 하지만 삭막한 풍광과 공사 소음에 씁쓸한 뒷맛이 남는 건은 우리가 감당해야 할 또 다른 몫이 아닐까.
_ 손상민(극작가, 평론가)
나의 도시, MAYA2015, Unity, Media, 2018
3작업과정_ 마야(MAYA) 초기작업
조성훈
약력
[학력]
2016 가천대학교 일반대학원 회화과 서양화전공 수료
2012 경원대학교 회화과 서양화전공 졸업
[수상경력]
2017 서울문화재단 예술작품지원 시각예술분야선정
2017 부평구문화재단 2017 부평영아티스트선정
[개인전]
2018 산양의 노래 (B.CUT 갤러리, 서울)
2017 She, He, It. (KT&G 상상마당 갤러리I, 서울)
2016 Newsdiary (성남아트센터 큐브미술관 반달갤러리, 성남)
[단체전]
2018 PAF2018 (바스티유 디자인센터, 프랑스 파리)
2018 남도밥상展 (인영갤러리, 서울)
2018 특급소나기展 (울산 문화예술회관, 울산)
2018 무술년 세화展 행복하개 건강하개 재밌개 놀아보개 복도 많이 받개 (행촌미술관, 해남)
2017 HEXAGON: 경계를 넘다 (조선대학교 백학미술관, 광주)
2017 미황사美黃寺. 땅끝마을 아름다운 절 미황사展 (학고재 갤러리, 서울)
2017 화이트세일展 (부평문화재단 부평구아트센터, 인천)
2017 부평영아티스트 선정작가전 (부평문화재단 부평구아트센터, 인천)
2017 7번유형展 (인디아트홀 공, 서울)
2016 해남. 천년의 시간이 머무는 곳展 - 2016 광주비엔날레 기념전 (해남종합병원, 행촌미술관,
녹우당, 충헌각, 대흥사, 일지암, 베짱이농부네 예술창고, 해창주조장, 미황사 자하루미술관,
백련사, 임하도, 이마도 작업실, 해남)
2016 낙원 가까이 해창展 - 2016 광주비엔날레 기념전 (해창주조장, 해남)
2016 화가의 봄소풍 예술이 꽃 피는 해안선 화첩展 - 풍류남도 아트 프로젝트 (행촌미술관, 해남)
[수상]
2017 서울문화재단 예술작품지원 시각예술분야선정
2017 부평구문화재단 2017 부평영아티스트선정
[레지던시]
2018 창원 리좀 레지던스 (경남문화예술진흥원 지원)
작가노트
| What you see is what you see?
유년시절, 나는 남다른 환경에서 세상을 대면했다. 태어나기도 전부터 어머니는 비디오대여점을 하셨고 아버지는 인테리어셨다. 어머니의 가게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비디오가게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엄청난 양의 비디오를 보유하고 있었고 아버지의 영향이 있었는지 집 구조도 독특했다. 어머니가 운영하시던 가게와 가정집이 하나로 구분 없이 복합된 특이한 구조였다. 현관이 곧 비디오대여점의 입구였고 온 벽이 비디오 진열장이었다. 가게 한가운데에도 방이 있었는데 그 방은 나름대로 홈시어터가 적당히 설치되어있어 평소 가족들의 영화관이자 나의 아지트로 활용되었다. 덕분에 같은 나이대의 아이들 보다 영상매체를 접하는 양과 시간이 월등히 많았다. 시간만 나면 비디오를 골라 봤고 매일 잠들기 전에 영화를 몇 편씩 봤다. 일본만화의 화려한 컬러며 할리우드영화의 스펙타클한 액션을 수도 없이 접하다 보면 자연히 그보다 자극이 약한 영화는 보는 도중에 감상을 멈추기 일 수였다. 언제든 방문 하나만 열면 장르불문하고 눈을 즐겁게 해줄 다른 영화가 수도 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굳이 지루한 영상을 보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흥미 없는 세상은 그렇게 버려졌다.
그 당시, 수많은 영상들을 통해 과거, 현재, 미래를 마음껏 경험했고, 상대적으로 자극이 약한 현실의 이미지에 실증을 느낀 나머지 비디오에 점점 빠져 들었다. 비디오를 통해 본 허구의 세상과 현실의 세상을 구분할 수 없던 어린 시절, 영화나 만화 속의 세상을 현실로 착각하여 현실을 영화 속 주인공처럼 지내려 했던 기억이 난다. 본인은 성년이 될 때 까지 그러한 환경에서 생활했다.
어린아이들은 뉴스를 보지 않는다. 아무리 큰 일이 터져도 관심도 재미도 없으면 신경도 쓰지 않는다. 반면에 별일 아닌 일이어도, 허구의 상황이라도 그 이미지가 시선을 끌만큼 재미있으면 그것을 선택하게 된다. ‘나는 아직도 어린애일까?’
비평글
조성훈에게 작업은 한 편의 영화를 만드는 것과 같다.
그는 캔버스 앞에서 스스로를 감독으로 설정한 후 배경을 만들고 주인공을 캐스팅한다. 관객은 그가 만들어낸 영화적 세계를 탐험하듯 작품을 통해 이야기를 구성한다. 영화가 시나리오를 쓴 작가와 감독의 일방적 이미지와 메시지의 결합이라면, 조성훈의 그림에서는 관객 자신이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또 하나의 생산자로 기능한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영상이 전달하는 이야기의 단편성을 뛰어넘는 이와 같은 가능성은 1차원적 회화가 기술적인 차원에서 구현해내는 4차원의 세계 너머를 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놀랍다. 우리는 그의 작품을 통해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매체가 지속적인 발전을 이루어 왔음에도, 한편으로는 1차원적 평면 회화를 뛰어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이처럼 그의 그림은 관객이 만들어낼 수 있는 수없이 많은 이야기의 가능성을 통해 끊임없이 확장하고 그 자체로 거대한 하나의 세계를 형성한다. 그것은 태초의 이미지가 추구하려했던 현실의 재현이자 유토피아적 이상, 그리고 주술적 예지력을 은연중에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추락한 버스 앞에서 위태롭게 보드를 타고 있는 <He needs work on the poses>(2013)와 불타는 배를 뒤로 하고 유유히 헤엄치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준 <I’ll teach you how to swim>(2013)은 작품이 제작된 시기와는 별개로 너무도 확연히 2014년 전국에서 생중계되며 눈앞에서 사라져버린 배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조성훈은 최근 공개한 <Flow> 시리즈에서 좀 더 과감하게 자신의 세계관을 펼쳐 보인다. 2007년부터 비공개로 작업한 이 작업에서 작가는 수많은 파이프가 꿈틀거리는 모습을 반복해 그린다. 그림은 흡사 파동처럼 보이는 이 수많은 흐름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 건지를 반문하게 한다.
이렇듯 회화의 오래된 가능성에 도전하는 그에게 작업은 자신의 말대로 일종의 게임인지도 모른다. 그의 작품을 기다리는 관객들에게 그것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게임이어야 하지 않을까.
_ 손상민(극작가, 평론가)
HISTORIC GARDENS, 30x30cm, oil on Linen, 2018
위중한 간극, 00:08:17, 단채널 비디오, 2018
위중한 간극, 53x83x2cm, 디지털 프린트, 2018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가변설치,디지털 프린트(29.742.0cm)액자 58개,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