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리좀영화교실-11회 강의]
주제 : Ⅱ프랑스 영화사 - 포스트 누벨바그: 1980년~2000년
강사 : 차민철 영화학과 교수(부산국제단편영화제 집행위원장)
일시 : 2021.06.21(월) 10시~13시
장소 : 에스빠스리좀 3층
주최·주관 : ACC프로젝트
공동주최 : 진주시민미디어센터, 경남영화협회
후원 : 영화진흥위원회
2021 리좀 영화교실의 열한 번째 강의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열한 번째 강의는 차민철 교수님의 ‘Ⅱ프랑스 영화사 <포스트 누벨바그: 1980년 ~ 2000년>’ 으로 진행되었습니다.
1980년대에는 영화사에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요? 과거에는 아날로그 물질에 영화를 기록했지만, 80년대 이후에는 영화도 하나의 정보로 취급하면서 디지털 방식으로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디지털 영화도 영화인가?’ 하는 논의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영화가 탄생한 이후부터 영화와 사회의 관계에 대하여 수많은 논의들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영화가 다른 예술 장르와는 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즉, 영화는 인류가 이루어낸 과학적, 기술적 진보와 예술적 표현의 욕구가 결합된 결과이며, 태생적으로 상업적(또는 산업적) 성격과 기술적 특성이 얽힌 복합적인 영역입니다.
영화는 일종의 문화상품 또는 관객에게 환상과 오락을 제공하는 미디어의 역할을 하고, 때로는 과학적 실험과 인문사회과학적 해석의 수단으로, 때로는 인간과 현실에 대한 대안과 비전을 제시하는 사회 변혁의 중요한 표현 수단으로 인식되기도 합니다. 이처럼 프랑스 영화는 다양한 가치와 복합적 의미를 다원적 관점에서 끊임없이 탐구하면서 진화해왔습니다.
그리고 영화와 관련된 용어들도 간단하게 살펴보았는데, 영화의 구성 요소에는 시네마와 필름이 있습니다. 시네마는 영화 ‘매체’에 대한 총체적 명칭을 의미하면서 영화 상영관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필름은 개별 영화 작품으로써, 셀룰로이드로 만들어진 필름을 의미입니다. 그리고 영화의 양식체계는 픽션과 논픽션으로 나뉩니다. 픽션은 허구로써 지어낸 이야기를 뜻하고, 논픽션은 상상으로 꾸민 이야기가 아닌 사실에 근거하여 만든 것입니다. 픽션과 논픽션 영화의 차이는 인물과 사건의 장면 등이 사실 그대로냐 아니냐에 달려있습니다. 즉, 픽션 영화는 인물과 사건의 장면 등이 사실 그대로가 아닌 작가의 상상력으로 창조된 영화이고 이는 곧 연출이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논픽션은 경험이나 사실을 그대로 나타낸 것으로 인물, 사건 등을 사실대로 기록하고 연출을 하지 않습니다.
영화에 쓰이는 간단한 용어들을 살펴본 후, 원시 영화에서부터 1990년대까지의 프랑스 영화사에 대해서도 알아보았습니다. 프랑스는 1895년 뤼미에르 형제의 ‘시네마토그라프(Le Cinématographe)’의 발명 이래로 세계 영화를 주도해 왔습니다. 그리고 프랑스 영화는 1950년대 이후 오랜 기간 동안 미학적, 비평적, 이론적 기준이 되었던 누벨바그와 작가(주의) 영화(Cinéma d’Auteur)의 전통에 많은 영향을 받으며 발전해 왔습니다.
뚜렷이 규정되기 어려운 개념인 ‘작가(주의) 영화’는 1950년대 말부터 1960년대 초 프랑스에서 사용된 구체적인 영화 사조 또는 비평의 한 경향으로, ‘작가성’과 영화의 ‘예술성’의 의미가 이론적, 개념적으로 정의되지 못해서 현재까지도 논쟁이 되고 있습니다.
누벨 바그 이후의 프랑스 영화는 1980년대까지 ‘작가주의’의 전통을 꾸준히 계승했습니다. 물론, 1986년의 ‘프랑스 68혁명’을 기점으로 진보적인 시네아스트들과 노동자들이 다양한 ‘영화집단’들을 결성하면서 정치적, 사회적인 주제의 ‘투쟁 영화(Cinéma Militant)’를 만들기도 했지만, 기존 영화시스템에서의 철저히 배격당하고, 프로퍼갠더적 성격을 지니면서 미학적으로 떨어지는 문제들로 대중적 지지를 받지 못했습니다.
포스트-누벨 바그(Post-Nouvelle Vague)는 1970년대부터 컬러TV가 보급되고 누벨 바그 영화들은 대중성을 갖기에 한계를 보였습니다. 이후 68혁명을 지나면서 다양한 정치 영화와 상업 영화가 활성화됩니다. 상업 영화의 대표 감독으로는 <남과 여(Un Homme et Une Femme, 1966)>의 클로드 를루슈(Claude Lelouch. 1937~)가 있습니다. 그리고 누벨 바그와 비슷한 연배지만 다른 세대에속하는 3명의 감독인 장 외스타슈(Jean Eustache. 1938~1981), 모리스 피알라(Maurice Pialat. 1925~2003), 필립 가렐(Philippe Garrel. 1948~)이 있습니다.
장 외스타슈는 첫 장편 <엄마와 창녀(La Maman et la Putain. 220mn, 1973)>를, 모리스 피알라역시 1968년에 <벌거벗은 유년 시절(L'Enfance nue)>을, 필립 가렐은 1967년 첫 장편 TV 영화 <아네모네(Anémone. 16mm)>를 연출했습니다. 이 시기에 등장한 감독들의 개성넘치는 데뷔작은 흥행과 관계 없이 새로운 관심과 기대를 불러왔습니다.
장-뤽 고다르(Jean-Luc Godard)가 이끈 ‘지가 베르토프 그룹(Groupe Dziga Vertov)’과 크리스마커(Chris Marker)의 주도로 노동자들이 결성한 영화집단 ‘메드베드킨 그룹(Groupes Medvedkine)’, ‘슬론/이스크라(SLON/ISKRA)’ 등은 프랑스 68혁명 시기에 급진적인 ‘투쟁 영화’들을 만들었던 대표적인 영화집단입니다.
한편, 1980년대에는 뤽 베송(Luc Besson), 레오 카락스(Léos Carax), 장-자크 베넥스(JeanJacques Beineix) 등을 중심으로 시각적 표현에 중점을 둔 ‘누벨 이마쥬(Nouvelle Image, 뉴 이미지)’ 경향이 등장하였는데, 이는 누벨 바그와 작가주의의 한계에 대한 대안적 시도였습니다. 누벨 바그 뿐만 아니라 헐리우드 액션영화, TV 광고, 만화, 뮤직비디오, Pop-Culture등 여러 매체에서 영향을 받은 누벨 이마쥬는, 화려한 비주얼과 소외된 캐릭터들, 어두운 정서, 격정적 사랑, 파리의 지하철등 사회의 어두운 면들을 표현했습니다. 결국 90년대에 각자의 영화 스타일을 추구하면서 누벨 이마쥬 운동은 끝이 나게 됩니다.
이처럼 누벨바그와 작가주의 경향은 프랑스 영화에 특별한 지위를 부여하기도 했지만, 1980년대 이후 막대한 자본력과 신자유주의 경제 논리를 앞세운 할리우드를 중심으로 하는 메이저 영화들에 대해서는 대중적, 산업적으로 여러 한계들을 보였습니다.
다음 리좀영화교실 12회차 강의는,
6월 21일 월요일 (14시~17시) 에스빠스리좀 3층에서
이상훈 프로그래머님의 ‘Ⅰ한국 영화사 - 2000년대~현재’ 가 진행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