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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리좀 영화교실의 아홉 번째 강의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아홉 번째 강의는 차민철 교수님의 ‘Ⅱ프랑스 영화사 <누벨 바그와 68혁명>’ 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이번 강의 주제에 들어가기에 앞서 이전에 진행되었던 Ⅱ프랑스 영화사 <영화의 탄생과 시적 리얼리즘>를 마저 다루었습니다.
영화가 본격적으로 제작되던 시기에 등장한 아방가르드 영화는 1920년대 유럽에서 시작된 초현실적인 내용의 실험영화입니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 등장한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받아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인 내용을 다루었고 프랑스와 소비에트 등에서 활발하게 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유성 영화 시대로 접어들면서 아방가르드 영화는 제작 여건의 어려움과 사회주의 영화의 대두로 점차 쇠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세계 경제 대공황과 나치즘, 파시즘의 등장으로 새로운 형식인 시적 리얼리즘 영화가 등장했습니다. 시적 리얼리즘은 당대의 현실을 반영하려는 리얼리즘의 의지와 시적인 분위기를 지니고 있습니다. 시적 리얼리즘 영화는 노동자, 군인, 갱, 범법자 등 현실에 안주하지 못하는 주인공을 보이고, 열정적이지만 결국 실패하는 사람들을 나타내면서 인민전선의 패배를 은유적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이후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영화에도 영향을 주게 됩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과 함께 시적 리얼리즘 영화는 쇠퇴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시간 못다 한 내용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누벨 바그와 68혁명>을 진행하였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발생한 세계 경제 대공황으로 인하여 유럽의 각 국가에서는 민족주의가 팽배하고 이로 인해 영화는 프로퍼갠더의 도구로 이용되었습니다. 히틀러는 레니 리펜슈탈에게 나치 전당 대회와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도록 했고, 독일에 맞선 미국 역시 다큐멘터리 영화를 프로퍼갠더의 도구로 이용했습니다. 이는 다큐멘터리 영화에 있어 하나의 새로운 경향을 탄생시켰는데, “다큐멘터리는 동시대의 현실만이 아니라 미래의 세대를 위해 과거의 아카이브로서도 기능해야 한다.” 가 그것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아우슈비츠 이후 시를 쓰는 것은 야만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처참했던 전쟁에서 예술의 존재와 역할에 대해 회의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후 영화는 기존의 리얼리즘이 갱신되기 시작했습니다.
이탈리아 무솔리니의 파시즘(fascism) 정권의 강력한 검열 아래 양산된 ‘백색전화(Telefoni Bianchi) 영화’라 불리는, 현실과는 거리가 먼 내용의 멜로드라마나 코미디 영화들에 대하여 정면으로 문제 제기하면서 등장한 네오레알리스모(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영화는 새로운 영화적 ‘리얼리즘’을 부활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허구적 스토리 대신 노동자와 서민 계층의 절망적 현실을 사실적으로 재현했습니다.
프리 시네마(Free Cinema)는 ‘일상생활 속의 인간’, 특히 발언권이 없는 ‘사회적 소외 계층과 개인’에게 관심을 가지고 발언권을 제공할 것을 지향했습니다. 또한, 형식과 주제의 실험과 변화를 통해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관습적 경계를 무너뜨림으로써 2차 대전 이후 새로운 영화미학의 지평을 확장했습니다. 이러한 영화미학의 새로운 도전들은 영화 촬영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1950년대 말에서1960년대로 이어지는 시기에 등장하는 다큐멘터리의 방법론이자 미학적 경향의 두 중심축인 ‘다이렉트 시네마(direct cinema)’, ‘시네마-베리테(cinéma-vérité)’와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했습니다.
1956년 11월 28일, 호제 바댕(Roger Vadim)이라는 기자 출신 감독의 <그리고 신은 여자를 창조했다>의 개봉이 프랑스 누벨 바그(Nouvelle Vague, 새로운 물결. 영어로 New Wave)의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이 영화로 인해 관객들은 새로움에 열광했고 또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리고 누벨 바그를 통해 ‘시네필(Cinéphile)’이 등장합니다. 시네필은 영화를 탐구와 연구(지식)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영화의 양식과 방법, 조건들에 대한 중요성을 다루는 새로운 종류의 영화 애호가입니다.
이러한 시네필 중에서 누벨 바그 감독들이 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누벨 바그 감독들은 기존의 관습적인 영화문법과 영화 산업 시스템을 거부하고, 개인적인 영화 창작을 추구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전 세대의 감독들을 부정하였지만, 4명의 장(Jean)에 대해서는 존중하고 그들에게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이는 기성세대가 영화를 오락의 하나로 여겼지만, 신세대는 지식과 표현의 창구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누벨 바그의 젊은 감독들은 장르 영화와 작가 영화 및 소비에트 몽타주 이론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프랑스 누벨 바그의 대표 감독으로는 “프랑수아 트뤼포”, “장-뤽 고다르”, “알랭 레네”가 있습니다.
누벨 바그 감독들에 의해 현대 영화(Modern Cinema)가 출현하게 되고 서사보다 서사의 구조, 영화적 이미지로 나타나는 시공간과 현실에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등장인물들은 현실에 존재할 만한 인물로 설정하고 스튜디오를 벗어나 실제 장소에서 촬영하는 방식을 선호했습니다. 폭넓고 다양하게 장르에 접근하였고 수정주의적 연출 방법론(<네 멋대로 해라(1959)>, <피아니스트를 쏴라(1960)>은 Film Noir와 갱스터 장르의 변주)을 사용하였습니다. 영화 스타일은 Jump-Cut을 사용하면서 열린 결말과 단절적인 서사구조, 카메라를 응시하는 등 유연하고 기존의 영화 문법과는 확연히 다른 스타일을 추구하였습니다. 그리고 기존의 영화 산업과 다르게 경량 카메라(16mm)를 사용하고 핸드헬드 촬영(불안정하게 보이도록 영상이 흔들림)과 다큐멘터리적 촬영도 시도했습니다.
프랑스 누벨 바그는 대중들이 시각예술로서 영화를 바라보도록 하여 영화의 지위가 격상하였고, 영화를 단순히 이야기의 전달만을 목적으로 두는 것이 아닌, 현실에서 보이는 세계와 환경을 폭로하는 방식으로도 여겼습니다. 누벨 바그는 이후 전 세계적으로 새로운 경향의 영화적 운동(뉴 아메리칸 시네마, 뉴 저먼 시네마, 시네마 노보, 일본 뉴 웨이브 등)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처럼 누벨 바그는 영화사뿐만 아니라 프랑스 사회 전반의 세대교체 현상을 지칭하는 용어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아름다움을 추구하지 말고, 현실을 직시하라는 의미에서 시작된 리얼리즘의 갱신을 기점으로 1950~60년대는 영화에서 미학적 경향이 가장 풍성했던 시기였습니다.
이번 시간에도 프랑스 영화사의 흐름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었고, 특히 영화사에서 중요한 누벨 바그와 시네필에 대해서 알 수 있었습니다.
다음 리좀영화교실 10회차 강의는,
6월 17일 목요일 (14시~17시) 에스빠스리좀 3층에서
이용철 영화 평론가님의 ‘Ⅲ영화 비평 - 이미지에 관련된 것들’ 이 진행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