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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 미제라블> 분노를 표현해야만 들어준다면 어쩔텐가?관리자작성일 21-06-14 00:00


<씨네아트리좀비단> 홍은혜님의 영화리뷰입니다.
'씨네아트리좀비단'이란 씨네아트리좀 영화 리뷰단 입니다.
씨네아트리좀과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분들께서 제공해주신 소중한 리뷰이며
앞으로 업로드 될 리뷰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레 미제라블



줄거리

“세상에는 나쁜 풀도, 나쁜 사람도 없소.
다만 나쁜 농부가 있을 뿐이오.” - <레 미제라블> 빅토르 위고
지방에서 전근 온 경감 스테판은 크리스, 그와다와 같은 순찰팀에 배정받는다.
증오와 불신이 난무하는 몽페르메유에서 스테판은 경찰들의 폭력에 충격을 받고
서커스단 아기 사자 도난사건을 해결하려다 예기치 못한 사건까지 발생하는데…
21세기의 ‘레 미제라블’, 끝나지 않은 분노의 노래!




21세기판 <레 미제라블>

몽페르메유의 '불쌍한 사람들'
프랑스 소설가 빅토르 위고가 쓴 소설 <레 미제라블(Les Misérables)>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영화는 맞다.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뜻을 가진 원작 소설은 빅토르 위고가 1845년 9월, 파리에서 멀리 떨어진 프랑스 외곽의 몽페르메유 지역을 여행한 후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레쥬 리가 감독한 영화의 배경도 몽페르메유다. 감독은 실제로 몽페르메유 출신이다. 빅토르 위고가 19세기의 몽페르메유를 그렸다면, 레쥬 리는 21세기의 몽페르메유를 담아낸다. 예나 지금이나, 이곳에 사는 이들은 대부분 가난하고 불쌍하다.



페르메유에 사는 아이들. 대부분 가난한 이민자 출신으로, 문제를 일삼으며 분노와 폭력적인 성향을 띤다.

그럼에도 영화의 시작은 오히려 경쾌하다. 2018년, 프랑스는 월드컵에서 우승을 거머쥐었다.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파리는 이를 기뻐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피부색, 출신국에 상관 없이 '프랑스'라는 이름 아래 하나된 모습이다. 자유, 평등, 박애를 상징하는 삼색의 국기를 어깨에 둘러멘 이민자 소년 이사(이사 페리카) 역시 프랑스의 승리에 환호하며 기뻐한다. 하지만 이후 이어지는 사건들은 이 같은 '하나의 프랑스'를 비웃기라도 하듯, 인종, 종교, 계급 등 다양한 층위에서 분열된 사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몽페르메유로 전근을 온 신입 경찰 스테판. 이 영화에서 그나마 유일하게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어른이다.

월드컵 장면 이후, 타 지역에서 몽페르메유로 전근을 오게 된 경찰 스테판(다미엔 보나드)이 등장한다. 신입 경찰인 그는 팀장 역의 크리스(알렉시스 마넨티), 그리고 그의 파트너 그와다(제브릴 종가)와 한 팀이 되어 움직인다. 그런데 스테판의 눈에 비친 크리스와 그와다의 방식은 너무나 폭력적이다. 길거리에서 마리화나를 핀 것으로 보이는 여자 아이들의 무리를 대하는 태도는 물론, 이민자 출신의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도 민중의 지팡이로서 공정해야 할 경찰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사라진 새끼 사자, 그리고 분노하는 사람들
이때, 일이 터진다. 아프리카계 이민자 출신의 소년 이사가 집시 세력들이 운영하는 서커스단으로부터 새끼 사자 '조니'를 훔쳐간 것. 이를 발견한 집시들은 저마다 둔기로 무장한 채 아프리카계 이민자들의 아지트를 찾아가 새끼 사자를 내놓으라며 으르렁거린다. 경찰 크리스와 그와다는 두 세력 사이에서 공권력을 휘두르며 억지스럽게 평화를 유지하고자 하고, 새끼 사자를 훔쳐간 인물을 찾기 위해 SNS를 뒤진 결과 이사가 범인임을 발견한다.

이후 이사를 쫓던 경찰들은 이사의 친구들로부터 반격을 당한다. 이 와중에 그와다는 실수인지 고의인지 모를 고무탄을 발사하고, 이에 이사가 맞고 쓰러진다. 이 장면을 근처 아파트에 사는 다른 이민자 출신의 소년 버즈(알 하산 리)가 드론으로 찍게 된다. 이 영상이 자신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을 우려한 부패 경찰 크리스와 그와다는 고무탄에 맞아 쓰러진 이사를 치료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드론의 주인을 찾는 데 혈안이 된다. 오직 스테판만이 약국으로 차를 몰고 가 이사를 보살필 뿐이다.


경찰 그와다가 쏜 고무탄에 맞은 이사. 그럼에도 경찰은 이사에게 "이 모든 건 네 잘못"이라고 겁박한다.



분노한 아이들의 노래
그러나 아이들의 분노는 거셌다. 사과 없이 침묵을 강요받은 아이들이 화염병을 들고 만 것. 경찰은 사과를 하기는 커녕 아이들의 잘못이라 매도했다. 그뿐인가. 자칭 시장이라 불리는 이민자, 무슬림 세력들 역시 아이들의 편에 서기보다는 자신들의 권력을 굳건히 하는 데 영상을 이용하고자 할 뿐이었다. 이렇듯 지역 내 상권을 주무르는 이민계 출신부터 무슬림 세력들, 집시들, 마약 밀매꾼과 경찰까지. 아이들은 무능한 어른이자 기성세대들에 대한 불신과 분노를 표출한다.

영화의 마지막. 이사는 자신을 그나마 인간적으로 대해줬던 스테판과 대치한다. 제발 도와달라는 스테판의 맞은 편에는 목격자이자 고발자인 버즈가 있다. 각자 손에 무기를 쥔 채 서로를 바라보는 이사와 스테판을 통해 감독은 질문한다. '무엇이 잘못되었으며, 어떻게 이를 바로잡을 것인가?' 감독은 빅토르 위고의 소설 속 문장으로 이 질문에 힌트를 던진다.

 

세상에는 나쁜 풀도, 나쁜 사람도 없소. 다만 나쁜 농부가 있을 뿐이오.
- 빅토르 위고, <레 미제라블>



영화 마지막에 표출되는 아이들의 분노는 기성세대인 어른들이 보여줬던 폭력만큼이나 무차별적이고 잔혹하다. '폭탄 같은 영화', '분노한 사람들의 노래'라는 한줄평처럼 폭발할 듯한 증오로 가득한 이들의 행동은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인가? 세상에 나쁜 풀도, 나쁜 사람도 없다면 - 어떤 농부가 되어 이 세상을 바로잡아야 하는가? 스테판에게 어쩔 수 없이 영상을 건네며, 그럼에도 '그들의 분노는 피할 수 없을 거야'라는 살라의 충고는 많은 생각을 남게 한다.



- 씨네아트리좀비단 홍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