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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아트리좀비단> 김준희님의 영화리뷰입니다.
'씨네아트리좀비단'이란 씨네아트리좀 영화 리뷰단 입니다.
씨네아트리좀과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분들께서 제공해주신 소중한 리뷰이며
앞으로 업로드 될 리뷰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줄거리
산 자여 기억하라!
5월의 ‘광주’를, 5월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1980년 5월 18일 좋은 빛(光州, Good Light)이라는 뜻을 가진 ‘광주’의 시민들이 신군부 세력에 의해 7천여 명이 무고한 희생을 당하고 있을 때, 좋은 공기(Buenos Aires, Good Air)라는 뜻을 가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국가 권력 또한 3만여 명의 시민들을 실종자로 만들었다.
지구 반대편, 광주와 부에노스아이레스라는 두 도시의 같은 이름처럼 놀랄 만큼 닮은 학살의 고통. 아직도 아픈 역사 속 시대를 겪은 살아남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생생하다. 남편과 자식을 지키기 위해 나섰던 광주의 어머니들은 오늘도 그날의 진상을 규명하고, 사라지고 있는 항쟁의 흔적을 복원하라고 투쟁한다. 강제 실종된 자식을 찾고자 77년부터 시작된 부에노스아이레스 어머니들의 5월 광장 침묵 행진은 지금까지도 같은 마음으로 계속된다.
평범했던 그들을 움직이고, 깨닫고, 투쟁하게 했던 국가 폭력의 기억은 이제 시대를 넘어 우리 다음 세대에게 전달돼 추모와 애도의 현재적 의미를 다지고, 우리가 정립해나가고자 하는 미래로 향해, 분명 더 좋은 빛과 더 좋은 공기가 될 것이다.
좋은 세상을 희망하는 방법 <좋은 빛, 좋은 공기>
신원불명 by 군부독재
<좋은 빛, 좋은 공기>는 군부독재가 만든 피해자, 특히 신원불명자들과 실종자를 기다리는 사람에게 관심을 둔다. 영화에서의 ‘의심’과 ‘확신’이라는 단어가 인상적이다. 인간은 많은 경우에 의심을 하기 마련이고, 가까운 사람의 죽음의 진위를 의심하는 일은 당연한 것이 된다. 시신, 뼛조각 하물며 유품조차 거둘 수 없다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믿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많은 진상규명은 이러한 이유로 이루어진다. 한편 사후관리가 단순히 피해자들을 진정시키는 용도만은 아니다. 이는 인간으로써의 공감, 사랑, 믿음 등 인도적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진상규명을 포함한 과거를 되짚는 일에는 우리의 시선과 마음을 조금 더 인간적인 차원에 비중을 두는 의식적인 훈련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좋은 빛, 좋은 공기>는 실종자와 실종자의 가족들을 조명하는데 있어 사명감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기술
202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많은 광주관련 작품들이 쏟아져나왔다. 다소 일관적인 기조의 작품들과 달리, 임흥순의 <좋은 빛, 좋은 공기>는 비슷한 역사를 가진 아르헨티나와의 연결을 통해 다양한 코드, 명제로의 확장을 시도한다. 특히 양국 청소년이 참여하는 워크샵에서는 기술발달로 인한 역사기록과 이를 되새기는 방법론을 비춘다. 글에서 영상으로, 영상은 첨단기술을 도입하여 다양한 감각과 접근의 가능성을 연다. VR을 포함한 첨단기술은 후세대의 유연한 아키이빙과 새로운 추모의 형식을 생산한다. 단적으로 엔딩즈음에 등장하는 청소년 워크샵 작품은 시공간을 완벽히 넘어서는 또 하나의 진정한 추모형식의 발명이다.
정보
<좋은 빛, 좋은 공기>는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 광주사태의 참혹함-실종자-아르헨티나-워크샵 그리고 이는 거울, 안녕, 눈까마스, 행진, 쑥갓 등의 파트로 구분된다. 안그래도 많은 정보량에 피곤한 우리는 이러한 연출에 다소 혼란스럽다. 개인적으로 <좋은 빛, 좋은 공기>에 담긴 정보량과 그에 따른 연출은 적합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많은 정보자체도 문제지만, 적어도 관객이 어떤 정보를 우선적으로 취사선택해야 하는지를 감독은 어느정도 제시했어야 할 것이다. 물론 이 조차도 감독의 의도일 지도 모른다. 정보의 가치를 일정선에 두고, 관객 나름의 감수성과 취향으로 습득하게 하는 것 말이다. 권위와 위계를 경계하는 작품에서 특정한 의미와 가치를 슬쩍 밀어넣는 일은 적합한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많은 영화에서 단 하나의 씬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곤 한다. 특정 씬 때문에 영화가 무너질 수도 있고, 특정 씬 때문에 그 영화를 마냥 싫어할 수는 없게 되는 경우가 있다. <좋은 빛, 좋은 공기>에서는 역시 마지막 씬을 짚고 싶다. 가상공간에서 과거를 체현하는 이미지들은 40년 전 광주사태와의 시간을 단숨에 좁히는 것처럼 보인다. 체현하는 주체가 청소년이라는 점은 더욱 마음을 크게 요동치게 한다. 그들은 남겨진 과거와 기술의 현재에서 올바른 미래, (제목을 빌리자면) 좋은 빛, 좋은 공기를 꿈꾸는 것이다. 감독의 말을 빌리면 자연을 통해 인간을, 고통의 역사를 기억해 고통이 되풀이되지 않는 세상을 희망하는 것이다.
- 씨네아트리좀비단 김준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