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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웰> 애정이 넘치는 진심이 담긴 거짓말관리자작성일 21-02-20 00:00


페어웰 (2021)




줄거리

뉴욕에 사는 ‘빌리’와 그녀의 가족들이
할머니의 남은 시간을 위해 벌이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거짓말을 담은 2021년이 거짓말처럼 행복해지는 <페어웰>






애정이 넘치는 진심이 담긴 거짓말

‘실제 거짓말에 기반한 이야기’. ‘암 선고를 받은 후 6년이 지난 현재 할머니는 건강하다.’ 룰루 왕 감독은 재치가 넘치고 영리하다. 영화의 시작과 끝을 통해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영화가 만들어졌음을 고백한다. 관객은 첫 자막부터 고개를 갸웃거리지만 이내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가 마지막 자막을 보고야 웃음 짓게 된다. 이 작품은 모든 이야기가 ‘실제’ 거짓말임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 실제 ‘거짓말’의 날줄과 씨줄을 잘 엮어야만 한 장의 아름다운 벽화가 만들어짐을 보여준다.


차분하고 정교한 장면 구성
<페어웰>은 미디움 샷과 롱 샷이 주를 이루며 가족 개개인과 구성원 전체를 부드럽게 감싸 안는 촬영과 설명적이지도 자극적이지도 않은 조명,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음악, 그리고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가 잘 어우러진, 담백하지만 관객들을 빨아들이는 절제된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몇몇 장면에서 주인공 빌리나 다른 인물들을 클로즈업으로 잡는 장면을 제외하고는 인물의 얼굴을 가까이서 찍은 화면 대부분은 미디움 클로즈업이다. 그리고 클로즈업 장면도 관객이 인물들에 동화하도록 유도하거나 극적으로 강조하기 위해 쓰였다기보다는 미디엄 클로즈업으로 느껴질 정도로 자극적이지 않다. 감독은 관객들에게 설명하고 강요하기보다는 친밀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차분히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예외적인 장면이 두 번 있다. 두 장면 모두 빌리가 중심에 있는데 클로즈업으로 잡거나 빌리에게만 초점을 맞추고 배경 인물은 모두 포거스 아웃으로 흐리게 처리했다. 이 장면들이 이 작품의 숨은 주제이기도 하다. 이 짧은 두 장면은 <페어웰>이 할머니의 이야기인 동시에 가족의 이야기지만 결국은 빌리의 이야기임을 보여준다.

문화 차이와 정체성
​이야기의 시작과 끝은 빌리가 나고 자란 뉴욕이다. 대부분이 할머니가 사는 창춘[長春]에서 전개되지만, 주인공의 고향, 감독의 고향인 뉴욕으로 이야기를 열고 닫으면서 룰루 왕 감독은 <페어웰>의 주제가 경계인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임을 드러낸다. 따뜻하고 정감이 넘치고 세심한 이 작품이 던지는 주제 의식은 묵직하다. 문화의 차이,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자세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 고향을 떠나 사는 사람들의 삶, 경계인의 모습, 이민자 1세대의 문화 정체성과 2세의 자기 정체성의 문제 등 다양한 질문을 감독은 정갈하게 잘 포장한 종합선물세트로 관객에게 건넨다. 일본에 사는 큰아들은 자신의 정체성은 중국인이라고 한다. 반면 빌리의 아버지인 둘째는 미국인이라고 말하며, 자신이 뿌리내린 곳에 의미를 둔다. 룰루 왕 감독의 문제의식과 세심한 연출은 이 부분에서도 빛난다. 진지하고 심각하게 이 장면을 끌고 가기보다는 빌리를 통해 자연스럽게 질문을 관객에게 던진다. 이민 1세대인 아버지는 자신을 미국인이라고 생각하는데 왜 빌리는 고민을 할까? 미국인이라고 말하는 아버지는 중국의 문화를 따라 착한 ‘거짓말’에 자연스럽게 동참하고 딸 빌리에게 그 이유까지 자상하게 설명해 준다. 반면 뉴욕에서 나고 자란 빌리는 그 문화의 차이를 이해하기 쉽지 않지만, 중국에 남아 할머니와 있고 싶다고 말한다. 질문에 대한 답은 관객 각자의 몫이다. 실마리는 빌리가 할머니에게 잠깐 배운 기체조의 호흡을 큰 소리로 내뿜는 마지막 장면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긍정의 웃음

차이와 다름을 이해하고 긍정하기란 정말로 어렵다. 자신을 감싸고 있는 굳고 견고한 껍데기를 깨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 껍질은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대부분 그 껍질은 다양한 방식으로 더욱 딱딱하게 굳으며 편견을 강화하고 재생산하는 데 최적화되어 있다. 정확히, 많이 알지 못하고 고민하지 않으면 껍질 안에 갇혀 아주 작은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살아간다. 뉴욕과 장춘이 혹은 서울이 세상 전부인 사람들이 있다. <페어웰>은 이 물리적 거리가, 문화적 차이가 생각보다 크지 않고 중요하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 씨네아트리좀 프로그래머 진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