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뜬금없는 얘기일 수도 있지만 난 영국영화를 만드는 감독 중 가장 아이러니한 사람이 켄 로치라고 생각한다.
그는 <달콤한 열여섯>, <보리밭을 흔드는 손>, <나, 다니엘 블레이크>와 같은 영화에서
노동자와 영국의 주변인들의 삶을 애정 가득한 시선으로 그려내는 걸로 정평이 나있다.
하지만 그런 그가 영국에서도 엘리트들만이 다니는 옥스퍼드대를 다녔다는 사실이 언제나 반전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그에 못지않은 감독이 또 한 명 있는데 바로 제임스 아이보리다.
그는 영국 사회와 영국 사람들의 삶의 단면을 너무나 기품 있게 그려내며,
아카데미에서 수상까지 했기에 당연히 영국인이라 생각되지만, 정작 그는 캘리포니아 출신의 정통 미국인이다.
그는 전통적인 영국인의 삶을 인간적이고 위트가 넘치는 부드러움으로 표현해내는 가장 영국적인 미국 감독인 것이다.
그런 감독의 영화 중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대표작은 바로 <전망 좋은 방>이다.
감독은 20세기 초반 엄격한 계급과 관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젊은 남녀들의 사랑이야기를
훌륭한 음악과 미장센으로 품격 있게 연출하였다.
감독은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서는 전환기를 맞아 갈등과 진통을 겪게 되는
영국 사람들의 모습을 문학에서 차용하여 진솔하게 담아내고 있다.
나는 그 대표적인 장면이 연못에서 사내들이 처음 만나 물장구를 치는 신이라고 생각한다.
젊은 조지와 루시의 남동생뿐만 아니라 목사까지 옷을 모두 벗고,
마치 유년시절의 모습처럼 즐거운 시간을 갖는데,
그 모습에서 19세기의 숨 막히는 관습에서 벗어나려는 20세기 신인류의 열망을 엿볼 수 있다.
아이보리는 <전망 좋은 방>을 시작으로 <모리스>, <하워즈 엔드>, <남아있는 나날>로 이어지는 명작들에서
주로 영국 귀족계급과 그를 둘러싼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는데,
서정적이면서도 동시에 내면적인 인물 묘사로 각광을 받았다.
그리고 그런 연출력은 <콜 미 바이 더 유어 네임>의 각본에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레전드가 될 배우들의 풋풋한 리즈시절을 만끽할 수 있는 기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