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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 좋은 방> 피렌체와 런던의 아름다운 풍경을 스크린으로 즐기고 싶다면관리자작성일 20-06-30 00:00



<전망 좋은 방>
피렌체와 런던의 아름다운 풍경을 스크린으로 즐기고 싶다면 





<전망 좋은 방 (1985)> 줄거리
첫 키스는 누군가의 인생을 영원히 바꾸기도 한다!
여행지 피렌체에서 ‘전망 좋은 방’을 루시에게 양보한 조지는 충동적이고 열정적인 몽상가.
그녀의 약혼자는 여성을 예술품처럼 소유하려는 보수적인 세실.
관습과 자유로운 삶 사이에서 갈등하며 진정한 사랑을 선택하려는 루시.
고지식한 사촌 샬롯의 가이드 없이 그녀는 지도 밖으로의 여행을 시작한다.







 
제 59회 미국 아카데미상 3개 부문 수상(각색상, 미술상, 의상상)에
빛나는 제임스 아이보리의 로맨스 걸작



가장 '영국'적인 '미국'인 감독 제임스 아이보리의 아름다운 시대극

다소 뜬금없는 얘기일 수도 있지만 난 영국영화를 만드는 감독 중 가장 아이러니한 사람이 켄 로치라고 생각한다.
그는 <달콤한 열여섯>, <보리밭을 흔드는 손>, <나, 다니엘 블레이크>와 같은 영화에서
노동자와 영국의 주변인들의 삶을 애정 가득한 시선으로 그려내는 걸로 정평이 나있다.
하지만 그런 그가 영국에서도 엘리트들만이 다니는 옥스퍼드대를 다녔다는 사실이 언제나 반전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그에 못지않은 감독이 또 한 명 있는데 바로 제임스 아이보리다.
그는 영국 사회와 영국 사람들의 삶의 단면을 너무나 기품 있게 그려내며,
아카데미에서 수상까지 했기에 당연히 영국인이라 생각되지만, 정작 그는 캘리포니아 출신의 정통 미국인이다.
그는 전통적인 영국인의 삶을 인간적이고 위트가 넘치는 부드러움으로 표현해내는 가장 영국적인 미국 감독인 것이다.
그런 감독의 영화 중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대표작은 바로 <전망 좋은 방>이다.
감독은 20세기 초반 엄격한 계급과 관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젊은 남녀들의 사랑이야기를
훌륭한 음악과 미장센으로 품격 있게 연출하였다.

감독은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서는 전환기를 맞아 갈등과 진통을 겪게 되는
영국 사람들의 모습을 문학에서 차용하여 진솔하게 담아내고 있다.

나는 그 대표적인 장면이 연못에서 사내들이 처음 만나 물장구를 치는 신이라고 생각한다.
젊은 조지와 루시의 남동생뿐만 아니라 목사까지 옷을 모두 벗고,
마치 유년시절의 모습처럼 즐거운 시간을 갖는데,
그 모습에서 19세기의 숨 막히는 관습에서 벗어나려는 20세기 신인류의 열망을 엿볼 수 있다.
아이보리는 <전망 좋은 방>을 시작으로 <모리스>, <하워즈 엔드>, <남아있는 나날>로 이어지는 명작들에서
주로 영국 귀족계급과 그를 둘러싼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는데,

서정적이면서도 동시에 내면적인 인물 묘사로 각광을 받았다.
그리고 그런 연출력은 <콜 미 바이 더 유어 네임>의 각본에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레전드가 될 배우들의 풋풋한 리즈시절을 만끽할 수 있는 기회.
 
영화에서 관습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랑을 꿈꾸는 루시 역을 헬레나 본햄 카터는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훌륭하게 잘 소화한다.

그녀가 내게 각인된 것은 팀 버튼 감독의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혹성탈출> 등에서 맡은 역할들인데,
전형적인 아름다움 보다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한 개성미를 발산하는 연기가 포인트였다.

그리고 데이빗 핀쳐의 수작 <파이트 클럽>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는 초반 루시가 내가 알고 있던 헬레나 본햄 카터란 사실이 쉽게 믿기지 않는다.
헬레나 본햄 카터가 이렇게 아름다운 배우이고, 매력적이란 사실을 헐리우드 상업영화에서는 쉽게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전망 좋은 방>에서는 새로운 사랑을 원하면서도 자신이 주체적으로 선택하기를 원하는
신여성의 모습을 너무나 매력적이고 설득력있게 그려냈다.

대표적인 장면이 약혼자에게 파혼을 선언하면서 자신은 벽에 걸어놓는 액자나 장식품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신인데, 루시란 캐릭터가 19세기에서 완전히 벗어난 인물임을 엿보게 해준다.

또한 나는 또 한명의 배우에 집중을 했는데 바로 "다니엘 데이 루이스"다.
미국 아카데미상에서 전무후무한 남우주연상 3회 수상을 이룩한 전설적인 명배우, 다니엘 데이 루이스.
그는 이 영화에서 그가 기존에 맡아왔던 정치인, 복서, 채굴업자와 같은 강인한 남성을 표현하는 것과 달리
운동에 젬병이며 친구도 없는 한량 귀족 남성의 역할을 너무나 매력적으로 잘 표현했다.
다른 사람이 맡았다면 비호감을 충분히 샀을 수 있는 역할을 그는 특유의 메소드 연기*로 너무나 생생하게 잘 표현했다.
난 이 영화에서 헬레나 본햄 카터와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리즈 시절을 엿보는 것만으로도 관람할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메소드 연기* - 20세기 초반 러시아의 연극연출가 스타니 슬로프스키가 주창한 연기기법으로 자신이 맡을 역할과 자신의 내면의 연결고리를 찾아서 배우 자신을 하나의 도구화하여 연기하는 걸 칭한다. 후에 미국에서 감독 엘리아 카잔이 액터스 스튜디오를 통해서 말론 브란도, 제임스 딘, 몽고메리 크리프트와 같은 명배우들을 배출했다. 한국에는 쉽게 얘기해서 송강호의 연기방식을 떠올리면 된다.)


탁월한 미장센과 음악의 향연에 빠져보자.
 
이 영화의 또 다른 매력 중 하나는 바로 피렌체의 아름다운 풍경이다.
실제 80년대 피렌체의 곳곳에서 고증을 통해 촬영한 풍경은
지금의 피렌체와 비교가 될 수 없을 정도로
목가적이며 낭만적이다.
제임스 아이보리는 이런 풍경을 마치 인상파 화가 르누와르의 유화와 같이 표현하기 위해 공을 들였다고 한다.
실제 촬영 때도 인공적인 조명을 최대한 배제하고 자연 그대로의 빛을 활용하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다고 한다.
또한 당시 영국 귀족사회의 모습을 최대한 구현하기 위해 자신의 사단 중 한 명인 제니 비번 의상감독을 고용했다.
제니 비번은 품격 있는 시대극의 격조를 높여주는 너무나 단아하고 기품 있는 의상을 채택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그 아름다움을 흠뻑 즐길 수 있도록 했다.

‘20세기 초 이탈리아와 영국’이라는 시대 배경에 맞춰
남성용 디너 자켓, 라운지 수트, 블레이저 자켓, 여성 캐릭터의 이브닝 드레스, 야외 의상, 외투 등
다양한 오리지널 의류를 준비, 영화 속 캐릭터를 에드워디언 시대의 매력적인 인물로 탄생시켰다.
그리고 아카데미에서 자신의 첫번째 의상상을 수상했다.

마지막으로 제임스 아이보리와 삼십 년 가까이 함께 작업해온 음악감독 리차드 로빈스의 음악이 우리의 귀를 호강시켜준다.
영화는 푸치니의 오페라 <자니 스키키> 중에서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O mio babbabino caro)’가 흘러나오면서 시작되고 끝나는데, 이것 자체가 하나의 액자식 구성의 틀로서 작용하여 수많은 관객들에게 영화에 대한 기대감과 만족감을 선사해준다.





<전망 좋은 방>의 아름다운 풍경과 음악에 빠지고 싶은 관객들은
'씨네아트 리좀'에서 그 황홀한 만남을 가져보길 바란다.
​- 씨네아트리좀 프로그래머 박성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