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한 소녀의 방황과 좌절, 그리고 성장을 다룬 성장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은희는 수많은 주인공이 그렇듯 이제 변화해야만 하는 시기의 위태로운 소녀다.
이제 어른이고 싶지만 아직 트레블링을 타는 걸 좋아하는, 그 간극의 한가운데 서있는 소녀.
은희란 주인공의 욕망은 단순하다. 바로 사랑받고, 인정받는 것. 하지만 그건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아버지는 떡집 일에 파묻혀 살며, 엄마는 그런 아버질 대신해 가게와 집안일에 항상 지쳐있다.
오빠는 서울대에 가야 한단 압박에 동생인 은희에게 너무나 폭력적이며,
언니는 열등감에 사로잡혀 은희를 챙길 여유조차 없다.
남자친구와 가장 친한 친구마저도 그런 은희를 수차례 배신한다.
오직 한자학원의 선생님, 김영지만이 그런 은희를 한 명의 인간으로서 온전히 존중한다.
김영지란 인물 역시 정확한 전사는 없지만, 학생운동으로 큰 상처를 안고 사는 인물이란 걸 쉽게 유추할 수 있다.
그런 그녀가 은희에게 수업 중 질문을 던진다. 상식만천하, 지심능기인.
서로 얼굴을 아는 사이 정도야 세상에 가득하지만, 마음까지 알아주는 이는 과연 그 얼마나 있을까?
은희는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하지만 질문에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이 질문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질문이다.
살아가면서 단 한 사람이라도 그런 이가 있다면 그 삶은 제법 훌륭한 삶이지 않을까?
미시적으로는 은희의 성장담, 거시적으로는 90년대 야만과 폭력성에 대한 증언
영화 초반 학교 장면이 배치되어 있는데 성적에 따라 분반을 한다.
그 과정에서 담임교사가 하는 말이 잊고 있었던 그때의 기억을 소환한다.
"공부도 못하는 게 왼쪽, 오른쪽 줄도 못서냐?"
그때는 일상적으로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다.
지금은 믿기지 않겠지만, 그때는 뭘 잘못했어도 맞았고, 뭘 잘했어도 맞았다.
성적이 올랐다고 맞지 않은 적도 있었고, 성적이 떨어졌다고 더 맞은 적도 있었다.
그때는 그게 워낙 일상다반사라 그런가 보다 했는데,
20여 년의 세월이 흘러 스크린으로 보니 너무나 폭력적이라 저런 일을 당했다는 게 믿기지가 않는다.
담임교사의 폭력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같은 반의 날라리를 무조건 2명씩 색출하라는 것.
친구에게 친구를 팔라고 강요한다. 마치 친구의 뺨을 서로 때리게 하는 것처럼.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싶지만, 그때는 너무나 많이 흔하게 그랬다.
교사가 그러하니 학생들 역시 잔인하기는 마찬가지다.
공부에 취미가 없는 은희를 보고 반 친구들은
'대학도 못 가고 우리 파출부라 하게 될 거'라 충격적인 폭언을 한다.
하지만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어느 한쪽이 일방적인 가해자고, 다른 한쪽이 피해자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당시 사회구조가 누군가를 짓밟으며 성공하길 바라는 경쟁 중심의 사회였고, 그건 지금도 변함이 없는 것 같다.
그 가운데서 수많은 은희가 양산(?)되었으며,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했다.
나 역시 거기에 해당했다.
그 야만성의 정점, 성수대교 붕괴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