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양군 이증은 조선 세종대왕의 서자 중 한 명이에요. 형인 수양대군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르는 격변기에 수양대군 곁을 지킨 인물로, 계유정난과 세조 즉위 과정에서 공을 세웠어요. 검색에서 확인되는 기록을 중심으로 생애를 정리해요.
출생과 가계
이증은 1427년에 세종의 서자로 태어났어요. 어머니가 21세였던 해에 태어났다고 기록돼 있어요. 왕의 적자는 아니었지만 왕자의 신분이라 군(君)의 작위를 받고 계양군이라 불렸어요.
세종은 많은 자녀를 두었고, 서자들도 군으로 봉해져 왕실 일원으로 대우받았어요. 이증도 그 가운데 한 명이었고, 형제 중에는 훗날 세조가 되는 수양대군이 있었어요.
계유정난과 수양대군
1452년 단종이 왕위에 오르자 조정에서는 어린 왕을 둘러싼 권력 다툼이 벌어졌어요. 이때 이증은 수양대군의 측근이 되어 한명회 등과 함께 계유정난에 힘을 보탰어요. 계유정난은 수양대군이 김종서 등 권신들을 제거한 정변이에요.
이증이 수양대군 편에 선 것은 형제 관계에 더해, 정변 이후 왕실 내 입지를 확보하려는 판단도 함께 있었을 거라고 볼 수 있어요. 어린 왕 아래에서 왕실 종친의 위상이 불안했던 시기였기 때문이에요.
세조 즉위와 좌익공신
1455년 수양대군이 세조로 즉위하자 이증은 좌익공신 1등에 책봉됐어요. 좌익공신은 세조 즉위를 도운 공로를 인정받은 신하들에게 내린 공신 칭호예요.
- 책봉 시기: 세조가 왕위에 오른 1455년이에요.
- 공로: 계유정난 때부터 수양대군을 도운 점이에요.
문서·기록을 맡은 역할
세조 시기에 이증은 관청의 문서와 기록을 관리하는 일을 맡아 신임을 얻었어요. 기록에서는 그가 사람을 대할 때 겸손했고 권세를 남용하지 않았다고 평가돼요. 종친이 정치적으로 위험했던 시기에 비교적 신중하게 처신했다는 뜻이에요.
이른 죽음과 시호
이증은 일찍 세상을 떠났어요. 기록에는 주색에 지나치게 빠져 일찍 사망했다고 전해져요. 시호는 충소(忠昭)로 알려져 있어요.
정리
계양군 이증은 1427년 세종의 서자로 태어나 계유정난에서 수양대군을 도왔고, 세조 즉위 후 좌익공신에 책봉됐어요. 문서를 맡아 신임을 받았지만 젊은 나이에 사망한 인물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