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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왕별희> 참혹한 시대를 살아가야만 했던 발없는 새, 그 고통의 향연관리자작성일 20-05-04 00:00



<패왕별희>
참혹한 시대를 살아가야만 했던 발없는 새, 그 고통의 향연 

 

<패왕별희 (1993)>줄거리
어렸을 때부터 함께 경극을 해온 ‘두지’(장국영)와 ‘시투’(장풍의).
세상에 둘도 없는 절친한 아우와 형이지만,
‘두지’는 남몰래 ‘시투’에 대한 마음을 품고 있다.
하지만 ‘시투’는 여인 ‘주샨’(공리)에 마음을 빼앗기고,
그로 인해 ‘두지’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되는데…
사랑과 운명, 아름다움을 뒤바꾼 화려한 막이 열린다!


 






중국어 영화로 유일무이하게
깐느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슬프도록 아름다운 영화.


파토스(pathos), 고통의 향연을 통해 깨닫는 삶의 카타르시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을 통해 비극을 최초로 정의한 사람이다.
그는 비극에 가장 중요한 근간이 파토스(pathos), 영어로는 페이소스, 한자어로는 고통,
우리 말로 하면 한이 있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 역시 삶에서 이유 모를 고통을 당하는데 그걸 등장인물의 삶에서 보면서
감정이입하고 눈물 흘리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패왕별희>는 파토스, 고통의 연속이다.
엄마가 매춘부란 사실의 고통, 그런 엄마를 다신 보지 못한다는 고통,
남자이면서도 여장을 강요당해야 하는 고통,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야 하는 고통,
그리고 자신이 사랑했던 인생의 모든 것인 경극을 욕해야만 하는 고통.
우린 그 고통을 각자의 고통과 치환시키며 이 영화에 빠져든다.



이 영화를 보는 단 하나의 이유? 오 나의 발없는 새, 장국영!!!
장국영은 56년생으로 어린 시절부터 부모와 떨어져 영국에서 공부를 했다고 한다.
70년대 말 방송국을 통해 데뷔했지만 우리에게 알려진 건 86년작 <영웅본색>이다.
그의 첫 등장 장면인 형인 적룡을 발견하고 마치 강아지처럼 뛰어가는 경찰생도의 모습인데 아마 다들 기억할 것이다.
<영웅본색>에는 당대의 슈퍼스타 주윤발도 출연했는데, 장국영과 주윤발을 비교해서 이야기하는 게 좋겠다.

주윤발은 홍콩액션영화의 전형이라고 볼수 있다. 건장함, 남성다움, 확신에 찬 아이콘으로 우리가 90년대 소비했던
홍콩영화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장국영은 그와 정반대다.
왜소하고, 여성스럽고, 어딘가 불안해보이는 이미지는 오히려 90년대 중반의 홍콩 사람들의 집단무의식을 자극했다.


당시 홍콩은 99년동안 영국의 식민지로 있다가 중국으로의 반환을 앞두고 있었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공산주의 국가로 반환된다는 도무지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그때 홍콩사람들의 집단무의식을 가득 채웠다.
그런 가운데서 우수에 차면서도 왠지 불안하고, 보호해야만 할 것 같은 장국영의 이미지는 큰 사랑을 받았다.
​그의 대표작은 <아비정전>에서 '발없는 새가 지상에 딱 한번 내려온다'는
그 대사는 당시 홍콩을 은유한것이고,
또한 장국영의 죽음을 마치 예견이나 한 것 같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홍콩영화의 과거, 현재, 미래.
나는 90년대에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때 비디오 가게에 가면 딱 세 섹션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헐리우드, 홍콩영화, 그리고 방화(한국영화). 그때 당시 한국영화는 슬프게도 극장에서 볼 수준이 못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헐리우드보다 홍콩영화를 더 좋아했다.
성룡, 주윤발 뿐만 아니라 감독인 오우삼, 서극까지 헐리우드까지 진출할 정도였다.
하지만 20년이 흘러 이제 더 이상 우리는 홍콩영화를 보지 않는다.
나 역시 극장에서 마지막으로 본 홍콩영화가 <무간도>인 것 같다.
그런 측면에서 <패왕별희>는 중국영화가 아니라 홍콩영화다.
지금의 중국의 영화환경에서 이런 걸작은 죽어도 깨도 만들 수 없다. 이유는 바로 검열 때문이다.
영화에서 문화대혁명에 대해 나온다. 그게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참혹한 것인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중국 당국은 '문혁'을 그런식으로 다루는 걸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중국이란 국가는 영화, 예술의 자유보다 공산당의 안위가 몇백배 더 중요하다.
3년 전, 중국의 영화제에 초청받은 적이 있는데 그때 한 중국감독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자신의 영화가 중국의 탄광촌을 다루었다는 이유로 해외영화제에 나갈 수 없다고 했다.
그때 확신했다. 공산당이 있는 이상, 검열이 있는 이상 중국에서 패왕별희같은 걸작을 만들 수 없다고.
그리고 지금까지 중국영화들이 그걸 증명해왔다. 어떻게 보면 아이러니하다.
아시아금융의 중심이자 자유로움에 걸작들을 만들던 나라가 이제는 쇠퇴하고,
당시 방화라고 천대받던 한국영화가 그 바통을 이어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끔은 그때가 그립다.
이소룡, 성룡, 적룡, 이수현, 주윤발, 유덕화, 장국영이 있었던 그때가 말이다.





<패왕별희>의 깊은 감동에 동참하고 싶은 '참' 관객들은
'씨네아트 리좀'에서 그 뜨거운 만남을 가져보길 바란다.
-씨네아트리좀 프로그래머 박성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