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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프리뷰]백년의 기억-남북 분단과 대립의 기원, 변화에 대한 희망관리자작성일 20-06-22 11:41


2020.06.22  정용인 기자   주간경향

출처 :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6&artid=202006121258471&pt=nv


 

[시네프리뷰]백년의 기억-남북 분단과 대립의 기원, 변화에 대한 희망

제목 백년의 기억(Korea, A Hundred Years of War)
제작연도 2019
제작국 프랑스
상영시간 112분
장르 다큐멘터리
감독 피에르 올리비에 프랑수아
출연 이호철, 박원순, 리종혁, 도널드 그레그, 찰스 암스트롱, 안드레이 란코브 외
개봉 2020년 6월 11일
등급 전체 관람가
수입/배급 전국예술영화관협회
배급총괄 에무시네마


 

오랜 기억의 한 토막. 무장공비를 사살하면 그들의 장비를 보여주는 전국 순회 전시가 있었다. 공산집단의 남침야욕을 잊지 말자는 반공캠페인의 일환이었으리라. 전시장엔 그들이 타고 온 공작선이라던가, 고무 잠수복, 휴대하고 있던 권총이나 난수표, 캐러멜, 미숫가루 같은 것도 보기 좋게 진열되어 있었다. 한구석엔 평양의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군사퍼레이드 영상도 반복 상영되고 있었는데, 어린 시절의 기억에 만날 TV에서 보는 음소거된 흐릿한 북측 영상이 아닌 선명한 화질에 여성 아나운서의 한 톤 높은 선동 소개가 인상적이었다.

날것 그대로의 북한이 생산한 정보는 마치 포르노그래피를 처음 봤을 때처럼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익숙한 역사에 대한 낯선 당혹감

프랑스의 피에르 올리비에 프랑수아 감독이 찍은 <백년의 기억>을 접한 한국의 관객들도 낯선 당혹감을 느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영화가 설정한 역사의 시간-100년-을 놓고 본다면 1919년까지 거슬러 올라가 남북한 체제의 기원을 따지는 셈이다. 1945년과 48년을 넘어 이제는 1919년 3·1운동과 그해 임시정부수립까지 자신의 정체성 확립에서 중요한 계기로 확장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내러티브가 있는 한편, 보천보 습격 사건을 대표적인 경력으로 내세우는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을 역사적 정통성의 뿌리로 보는 북한의 ‘이야기’를 대립시켜놓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각각의 경로로 발전해온 이야기들을 영화는 교차편집해 보여주고 있다. 마치 동굴 안에서 자기만의 이야기로 세계를 구축해온 두 사람 사이에, 감독이 가운데 서서 이야기를 대신 전하는 느낌이다. 영화를 보다 보면 벌써 70년 가까이 단절되어 있지만 결국은 같은 부모를 가진 쌍둥이였다는 것을 발견하는 낯섦이라고나 할까.

영화에서 인상적인 것은 이제 작고해서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는 사람들이 내려놓고 들려주는 자신의 경험담이다. 원산이 고향인 소설가 이호철은 자신이 어렸을 때 고향에서 들었던 ‘김일성 장군’ 이야기를 한다. 요즘 들어 소식이 뜸하다 싶어 찾아보니 2016년 작고했다.

“앞으로 통일은 반드시 오리라고 생각해요. 내 손자들이, 증손자들이 통일한국에서 살리라고 생각합니다.” 영화에 에필로그처럼 덧붙여져 있는 장면에서 나오는 이희호 여사의 말이다. 지난해 이맘때 세상을 떠난 여사의 말이 묘한 여운을 남긴다. 지난 총선 때 기독자유통일당 선대위원장으로 ‘선’을 훌쩍 넘어 저쪽으로 달려간 운동권 출신 정치인 김문수가 비교적 합리적인 남북관계에 대한 인식을 영화에서 드러내는 것 역시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감독에게 물어보지 않았지만 아마도 이 인터뷰 영상은 그가 경기도지사로 재직하던 시절 찍은 것 같다.

같은 비중으로 북한의 현역인사들을 다룬다. 리종혁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같은 이는 그간 북·미대화에서 북한 대표로 참석해 우리에게도 낯이 익다. 생생하게 자신의 경험담을 묘사하는 북한의 여성장군도 인상적이다. 우리에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지만 장군 칭호를 받기까지 많은 ‘사연’이 있을 듯하다. 6·25 참전 회고를 하는 걸 보면 최소 80세가 넘은 할머니인데 비교적 정정한 편이다.

북한 기록물 보관소를 운영하는 분의 인터뷰는 아마도 감독이 북측이 보관하고 있는 필름을 얻어 자료화면으로 사용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을 것이다. 주체사상과 북한 체제에 대한 캄보디아 전 국왕 시아누크의 증언 영상은 그렇게 얻은 귀한 자료로 보인다. 북측 자료를 접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시아누크는 독일 작가 루이제 린저 등과 함께 대표적인 친북인사였다. 우리야 주로 북한 측 문서 자료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그의 친북적 생각을 알 수 있었는데, 그의 증언 영상을 발굴해낸 것은 한반도 문제에 관한 감독의 내공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감독은 1971년생이다).

악화된 남북관계 희망의 역설

영화가 공개된 시점은 지난해다.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남북관계나 한반도 주변 정세는 꽤 괜찮았다. ‘하노이 노딜’이라는 별칭이 고유명사가 된 것처럼 지난해 2월 베트남 북·미회담은 성과 없이 끝났지만 6월 판문점 남·북·미정상회동은 또다시 역사에서 전례 없는 사건으로 희망의 끈을 이었다.

영화는 100년 가까이 이어져 온 대립과 분단의 끝자락에 마침내 다른 변화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적 전망을 제시하며 마무리된다. 문재인 정부 1년차의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영상이 그 희망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제시된다. 그리고 3년이 지난 지금 탈북자 대북전단 문제로 남북관계는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이런 급변하는 상황 변화 가운데 냉정한 분석과 조심스러운 낙관을 담은 영화가 개봉하는 것 역시 또 하나의 역설적 풍경이다.

남북을 아우르는 전통무예, 태권도?

앞서 한반도 상황과 문화에 대한 감독의 조예가 상당하다고 이야기했지만 한계는 있다. 감독은 한국의 전통무술 태권도의 품새를 그가 묘사하는 남북 체제의 공통 키워드이자 각자의 발전경로를 보여주는 핵심 주제어로 사용한다. 태권도 품새 ‘고려’에서 오늘날 남과 북을 지칭하는 공통된 영문 표기인 ‘코리아(KOREA)’가 기원했음을 알려주는 식이다.


 

그런데 한국의 전통무술이라는 것, 태권도의 성립 역사를 조금만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발명된 전통’이란 걸 안다. 오늘날 남북과 전 세계에 퍼져 있는 태권도의 기원은 일제강점기 말 1944년 서울에 있는 가라테 도장들이다. 이승만 정권 시절인 1955년 ‘태껸’에서 착안해 최홍희가 ‘태권도’라는 이름을 붙일 때까지 불리던 이름은 ‘공수도’라든가 ‘수박’과 같은 이름이었다. 최홍희가 망명하면서 그가 주도한 국제태권연맹(ITF)이 북에 들어간 것이 오늘날 남북에서 각자 발전한 태권도 역사의 시작이다. ITF에 대립해 세계태권도연맹(WF)을 만든 김운용씨를 인터뷰한 것을 보면 감독도 이 ‘만들어진 전통’을 어렴풋이 눈치챘을 텐데 영화에서 언급은 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주체’와 같은 품새는 한국에서는 쓰지 않는, 북에서 만들어 사용하는 품새다.

시사회가 끝난 뒤 프랑스에 있는 감독과 원격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품새로 장·절을 나눈 아이디어와 관련해 남북 간 차이를 아는지 감독에게 물었다. 감독은 “남과 북에서 다른 품새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대한태권도연맹에서 소화할 수 없는 품새는 별도로 찍었다”고 답했다. 영화를 보면 ITF 소속으로 보이는 외국인 수련자가 ‘주체’ 품새 등을 선보이고 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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